2010년 7월 1일 목요일

창법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 2

신중현 옹께서 은퇴공연 이후에 오랜만에 무대에 서신단다([공연정보]). 이번에도 못가보는 것이 무척 아쉽다만, 공연 소개 문구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찾게 되어 옛날에 쓴 글을 생각나게 하는구나.

락의 저항정신
1970년대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갖은 탄압속에서도 ‘락’의
저항정신을 고수했던 그.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가 발표한 ‘아름다운 강산’은 ‘4대강 사업’과 맞물려 환경보전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에 특히 가슴에 와닿는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나뭇잎 푸르게/강물도
푸르게/아름다운 이 곳에 네가 있고 내가 있네”
이번 무대에서는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이 곡을 부릅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는 올곧은 창법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아래는 예전 블로그에서 가장 방문수가 높았던 문제의 글 ㅋ


창법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

신중현과 박정희 정권 사이의 유명한 일화로, 그의 대표작인 [아름다운 강산]의 탄생 비화가 있다. 당시 여러 가수들을 통해 히트곡을 만들어냈던 신중현에게 집권당이던 공화당에서 전화를 걸어와 박통 찬가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신중현은 잠시 고민하고는 거절했고, 조금 뒤에 청와대에서 비슷한 전화가 걸려왔으나 역시 거절했다고 한다. 신중현을 비롯한 록뮤지션들을 대거 철창 속에 가두었던 대마초 파동은 이미 그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데, 어찌 되었든 권력의 주문을 연거푸 거절한 입장에서 신중현은 이 곡을 만들었다.


작사 신중현
작곡 신중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나뭇잎 푸르게 /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 달려보자 저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 말해보자 새희망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우리는 이땅위에 /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찬란하게 빛나는 / 붉은태양이 비추고
하얀물결 넘치는 / 저바다와 함께 있네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사랑하는 그대와 / 노래하리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먼훗날에 / 너와나 살고지고
영원한 이곳에 / 우리의 새꿈을
만들어 / 보고파

봄여름이 지나면 / 가을겨울이 온다네
아름다운 강산

너의 마음은 나의 마음 /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
너와 나는 한마음 / 너와나

우리 영원히 영원히 / 사랑 영원히 영원히
우리 모두다 모두다 / 끝없이 다정해

가사로만 보면 너무도 노골적인 국가 예찬이지만, 그 속에는 직설어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어와 역설이 숨겨져 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김정미가 부른 버전이다. 중앙정보부로부터 '퇴폐적인 창법'으로 지목받았던 그녀는 이 곡에서도 퇴폐미를 마음껏 발산한다. 가령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부분에서 콧소리가 섞여 울리는 부분에 이르면 가사의 내용과 창법이 묘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여가수의 색기 어린 창법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을 얼마나 곤혹스럽게 했을지 짐작해보라.

김정미 버전의 반어법을 증명해주는 것은 그 정반대편에 있는 이선희 버전이다. 맑은 목소리와 내지르는 창법의 이선희는 직설적인 가사를 직설적인 창법으로 배가시킨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이 강산이 아름답고 '선진조국의 드높은 기상'이 한껏 와닿는 느낌이다. 반어법을 무력화시키는 이 모범생 가수의 단정함!
그녀의 단정함은 산울림의 단정함이 의도했던 은근한 조롱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야말로 순도 100%의 단정함. 이것은 이후 그녀의 정치적 선택과도 연속선상에 있다. '퇴폐적'인 의도로 탄생된 이 곡이 어느새 이선희라는 '국민가수'의 대표곡으로 탈바꿈한 데에는, 그런 단정함을 사랑했던 권력과 언론의 부추김 또한 있었음을 쉽게 추리해 낼 수 있다.

두 가수, 두 창법이 빚어내는 이 차이가 내가 김정미를 듣고 또 듣는 이유다.


2010년 6월 7일 월요일

서사가 빈곤해지면 이국을 착취하라: 《섹스 앤 더 시티 2》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섹스 앤 더 시티 2》는 《Sex & the Desert》다. 뉴욕이 나오긴 하지만 이 영화는 뉴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런던의 올드미스 브리짓이 결혼하고 할 말 없어지자 태국으로 날아갔듯이, 뉴욕의 前올드미스 캐리는 두바이로 날아간다. 결혼의 중압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달아난 세 여자의 얘기는 pc하지만 힘이 없고, 홀로 꼿꼿이 싱글 섹스 라이프를 즐기는 사만다는 과장되다 못해 괴물로 묘사되고 있다. 맨하탄의 복잡한 일상과 의무들 속에서 절제 없이 소비하는 그녀들이 갖던 일말의 도발성은 이국의 낯선 존재들 앞에서의 과시적 소비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녀들의 '속깊은 게이친구'들이 결혼하며 시작하는 도입부가 주는 착취의 불쾌감 역시 이국을 착취하는 중반부의 불쾌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막판에서 캐리든 누구든 돌씽으로 만들며 끝냈다면 조금이나마 만회가 되었겠지만 후반에서마저 갈등 수습과 봉합에 급급한 이 영화는 너무 멀리 갔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진보신당

아래 글은 심상정이 사퇴 발표하기 하루 전날, 그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서 올렸다가 황급히 지운 글이다. 무능한 한명숙이 예상치 못한 선전을 한 것을 보고 결과론적으로 판단하여 노회찬에 대해 원망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의 판세에서 여러모로 동떨어져 있는 소리로 보이겠지만,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다시 이 글을 올린다. 심상정의 사퇴는 대단히 유감이지만 진보정당 내에서의 "정치인"과 평당원의 관계, 당내 민주주의와 표상의 문제에 대한 '자칫 잊을 뻔한' 화두를 되돌려 줬다는 점에서 아픈 소득이다.

그리고, 노빠들은 그 아가리 좀 닥치라. 떠다주는 숟가락도 제 입에 못넣을 정도로 무능한 前 이라크 전범 총리가 번드르한 외모빨과 사기꾼의 풍모를 풍기는 말빨로 무장한 개발주의자에게 발린 것을 두고, 왜 전쟁도 반대하고 개발도 반대하는 사람에게 와서 원망질이냐 원망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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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지지와 담론 정치

진보신당이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두 상징적 정치인을 단체장 선거에 배치한 것을 두고 '소모'라 평가하는 이도 있고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신당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독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악담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진보신당을 넘어서 이른바 '진보정당' 운동이라는 것을 해온 이들에게 무척 의미 있는 연대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있었던 진보 지식인 107명 진보신당 지지선언을 보면 그간 이런 형식의 지지선언에서 보기 힘들었던 이름이 종종 보인다.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말하며 제도권 내의 의회정당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김세균, 들뢰즈 푸코 이후로는 정치운동에서 탈주한 것처럼 보이던 이진경, 소위 '문화운동'의 바운더리를 만들고서 정당운동과는 거리두기를 해왔던 강내희와 문화이론의 멤버들이 그들이다. 그런가 하면 진보신당과의 연대 문제로 분당 위기까지 겪었던 사회당 역시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평을 재선거를 준비중인 금민 전 대표가 24일 진보신당 수도권 후보 지지 선언을 했고, 인천시당도 28일 진보신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것은 "좌파라면 진보신당 밑으로 대동단결" 이런 것이 실현되었다기보다는 정당운동이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이제야 비로소 진보정당 운동의 바른 판세가 그 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민노당의 반MB 연대를 조롱하고 또 누군가는 비웃지만, 내 심정은 그들의 '솔직한' 행보가 너무나 고맙고 또 반갑다. 애초에 진보정당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달랐던 사람들이고, 지금의 행보 역시 그들의 정체성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고 진지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민노당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간 그들과 섞여 있느라 괴상한 모양새로 엎치락 뒤치락 했던 진보정당 운동의 10년 역사가 아깝다면 아까울까.

진보정당은 '혁명'용 정당이 아니다. 혁명은 누군가가 기획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잠정적인 내 견해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혁명적 모멘텀이 형성된다면, 그것이 내셔널리즘이나 인종주의, 반공주의나 패권주의, 정치적 냉소주의나 반지성주의로 오염되어 왜곡되고, 종국에는 혁명이 아닌 반혁명, 변혁이 아닌 근본적 회의로 치닫지 않기 위한 "준비된" 담론지형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정당 운동이 그런 혁명적 상황을 '준비'하는 운동 역시 아닐 것이며, 그보다는 그 "담론의 지형"을 만드는 데 중요한 한 축이 되는 운동이 될 테다. 얼마 안되는 TV토론 출연으로 각광을 받는 심상정, 노회찬의 정책 공약들과, 꽤나 흡인력 있게 잘 설계된 사회당의 '기본소득' 정책은 그런 담론 정치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팻 메스니: 19세기말적 기계미학 혹은 백인-개인적 임프로비제이션의 완성

팻 메스니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예매를 했을 적만 해도 "오케스트리온"이라는 새 앨범+투어의 명칭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팻 옹의 열혈팬임을 인정 받아 이번 투어의 공식 티셔츠 디자인으로까지 채택된 만화가 눈고양이 화백의 그림을 보고서야 그게 1인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가 공연일인 20일에야 드디어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서 놀라움에 감탄 연발을 멈추지 못했다.

사진으로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잘 전달이 안되는데, 저 자동연주 기계들에 둘러싸인 팻 옹은 그야말로 실험실의 과학자의 포스를 풍겼다. 전자 신호로 움직이는 각각의 기계들은 신호를 받을 때마다 빛을 발했고, 저 냥반은 그게 너무나 자랑스러운지 신모델 로봇 전시회에 나온 박사과정마냥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고 설명을 해댔다. ㅋ 같이 간 선배 말마따나 연주실력이 받쳐주지 않고 그저 저런 실험만 했다면 헐렁했을텐데 실력마저 출중하니 여러모로 흡족한 연주(혹은 퍼포먼스?ㅋ)였다.
다만 팻 옹 본인이 저런 구상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해주는데 그제서야 그의 음악세계가 재즈의 시원으로부터 저 멀리 다른 어딘가로부터 유래하여 잠시 재즈를 경유했다가 다시 다른 차원으로 떠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살배기 시절 할아버지의 자동연주 피아노에 꽂혔던 것이 이 모든 사단의 배경이라며 그는 9살의 꿈을 머금게 해주었던 1920년대 뮤지션들의 자동연주 기계 실험에 대해 오마주를 던졌다. 정확히 말하면 18세기의 자동인형과 19세기 말의 기계미학의 산물이었을 저 꿈은 19세기 말에 뉴올리언즈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재즈와는 전혀 다른 미학, 판이하게 다른 인간관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출중한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중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각각의 임프로비제이션이 자유롭게 들어가고 빠져나가는 절묘한 재밍의 팀웍과 공동체적 인간관의 산물인 정통 재즈와, 프로그래밍된 자동기계-악기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통해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극대화하는 팻 옹의 재즈는 이미 다른 장르를 넘어 다른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빌 에반스, 키스 자렛, 얀 갸바렉 등의 백인 재즈를 통해 그 뿌리를 만들었던 이 사색적인 개인 음악은 19세기적 기계미학의 이상과 결합하면서 성공적으로 그 숙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구조조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기계에 밀려 이번 투어에서 제외된 팻메스니 그룹의 다른 세션들을 생각하니 잠시 러다이트 운동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역시 좋긴 좋았다는..

2010년 5월 11일 화요일

무릇 장로님과 그 종들이 명하나니

[연합] 법원, 장애인 유아 살해한 산모 선처

일찍이 '인간' 아닌 것들이 갈 길을 열어주시었던 장로님과 그 뜻을 받드는 어린 양들은 오늘도 바지런히 길을 닦고 또 닦고 있나니, 그 길을 법전에 명문화한 바 "우생학"이라는 이 시대의 정신을 우리는 찬양해 마지 않는다. 거룩하신 장로님의 종임을 스스로 명심한 판관들은 위와 같이 그 길을 넓히고 또 깊게 하여 어리석은 후손들이 따를 판례를 만들고 또 만들어 장로님의 우생 진리의 실용성을 드높이고 있도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무엇이냐? 우리 어린 양들은 장로님의 깊은 의중을 읽어 그 짧은 두 글자 사이에서도 자간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나니 그것이 바로 '실용'의 정신이다. 무릇 장로님 가라사대 인간은 '쓸모'가 있어야 하는 바, 양손 양팔 멀쩡하고 눈코귀 제대로 뚫려 있어 말끼를 못알아 듣는 일이 없어야 하나니, 일찍이 장로님께서 이 땅에 손수 트신 거룩한 물길에 한 줌 희망이 되고저 삽을 들고 땀 흘려 보탬이 될 수 있어야 '인간'이다. 이 물길의 행렬을 가로막는 사탄의 무리들이 그 씨앗을 말리고저 회유와 거짓 유혹을 거듭하지만 장로님의 일침에 회개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도다. 여기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보태어 이르나니 혹여 그 씨앗의 자리에 '인간'으로써 '쓸모'가 없는 하나님의 시험이 들어선다면 장로님을 믿고 그 싹을 자르도록 하여라. 그 죄는 장로님의 뜨거운 눈물로 모두 씻겨 나갔나니, 혹여 그 큰 뜻을 이해치 못한 네 이웃이 너를 지탄커든 우생학의 교리 제14조 1항을 참조하라고 일갈토록 하여라.

그리 하여 장로님과 그 종들이 선언하나니, 저 여인의 죄는 사하였노라.

장로님 인증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베크 옹



아놔, 프리미어에서 화면비 조절은 어떻게 하는 거임? 16:9로 간지 나게 찍었는데ㅋ 더구나 유튭에서 화면을 씹어먹은 것인지 싱크로가 어긋나는 부분도 발생 ㅡㅡ;

2010년 5월 4일 화요일

뉴 올리언즈 방문 후기

1. 도시 전체가 "재즈가 생활이고 밥벌이에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공항 이름도 루이 암스트롱 공항이고, 셔틀버스나 식당, 가게 등등에서 재즈가 흘러나온다. 어제 가본 어떤 박물관에서 들은 설명으로는 '재즈 퓨너럴'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상을 당한 가족들이 밴드를 고용하고 신문에 장례식 광고를 내면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함께 재즈를 들으며 고인을 보내는 행사라고.

2.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상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 생활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담론은 넘쳐나는데,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가는 곳곳마다 "rebirth"나 "rebuild"의 구호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허리케인 시즌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라고 묻는 사보험 광고가 뻔뻔하게 라디오를 타는 것을 보면 재난의 기억은 공공성의 강화보다는 개인적인 불안과 공포를 돈과 맞바꾸는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흑인들이 많다는 것은 느꼈지만 도시 자체가 관광지로서 의미가 크다보니 그들 생활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밖에 접할 수 없었다. 버스마다 에이즈 관련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가난한 흑인 에이즈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간다는 현실이 여전히 진행형인 듯도.

4. Jazz & Heritage 페스티벌 최고 스타였던 Pearl Jam의 공연은 나에겐 악몽이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원격 공연을 시도한 '최초'의 공연이라던가. 사회자가 나와서 그 얘기를 하고 무대 양 옆의 스크린에 사막형 군복을 입은 부대원 열 명 남짓이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는 화면이 나온다. 순간 Pearl Jam을 보러온 수천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USA"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원격 공연 따위의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갔던 나는 그 순간 나치 전당대회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펑크한 차림의 자유로운 스타일의 젊은 관중들이 일제히 국가를 연호하는 그 순간의 아이러니란. 주최측만의 의도일 것이라 애써 위안하며 참아보려 했지만, 무대에 등장한 Pearl Jam 역시 "수고하는 장병들"에게 호의의 인사를 던지고 또 다시 "USA" 러시. 원래 같은 시간대에 다른 무대에서 진행되느라 얘네 공연 40분 정도 보고 중간에 들어가려 했던 Jeff Beck 공연으로 황급히 장소를 옮겼다. 다행히 그곳에선 그런 짓은 안 하더라는. 이번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제 Pearl Jam을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5. 재즈페스티벌의 그런 시도들, "rebuild, reuse, rebirth"라는 구호와 공공성을 경유한 국가적인 제스처들을 보면 이런 로컬 단위의 문화 산업이 Nation을 지탱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것 같다. 한국이 일상에서 Nation에 관한 담론으로 과포화되어 있다가 문화산업으로 가면 마치 그에 초탈한 마냥 '글로벌'한 어딘가로 탈주(?)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편이라면, 미국은 일상에서는 아무도 Nation을 말하지 않는데 오히려 저런 혼종적인 문화 이벤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USA가 압도하는 편이랄까.. 크레올이 어떻고, 시에라 리온의 난민들이 어떻고 하며 온갖 문화적 음악적 다양성으로 뻑쩍찌근하게 돌아가던 판에서의 최고 흥행공연이 저런 프로파간다로 귀결된다는 것이 참 씁쓸하더만. 마침 뉴욕에서 무슨 테러 모의가 있었니 하면서 공항마다 위험 수위가 높다는 표지판이 붙는 여전한 911의 지배 현장.

6. 남부의 보수성은 유명하지만 그래도 피부로 느낄 일들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미국 와서 처음으로 인종 때문에 모멸감을 느껴야 했던 일들이 두어 번 있었다. 아이러니인 것은 그렇게 마주쳤던 남부의 백인들 역시 "텍사스 레드넥" 따위의 호칭으로 멸시 받는, 교육 수준 낮고 소득 수준도 낮은 하층 계급이 많다는 것. 자신의 소수성에 대한 분노를 자기보다 못한 소수자들에게 해소하는 전형적인 사이클.

7. 유스호스텔은 참 신기한 곳인게, 그냥 혼자 구경하다 올 생각으로 갔던 여행에서 쌩판 처음보는 스물댓 살의 백인 애들 세 명과 친구가 되어 3일 동안 같이 돌아다니게 만들어주었다. 미시건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는 애들인데, 대학원생이 아닌 백인들과 이렇게 가깝게 지내보긴 또 처음이군.

아래는 사진. 재즈페스티벌은 동영상만 찍었는데 어쩔지 생각중.

루이암스트롱 공항 벽면에 부착된 그림. 저것 말고도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그림도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음.


미시시피강.


프렌치쿼터에 있는 건물들이 유명한데 찍고 나서보니 대부분 관광객들을 의식한 인위적인 건물들이 많았음. 이건 좀 다른 느낌.

줄 서서 들어가야 했던 유명한 재즈 클럽 "Preservation Hall"의 전속 밴드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