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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3일 화요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미국에서 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의 편치 않은 관계의 대부분은 아시아계 탓이다. 직장에서 중간관리자가 더 악랄하고, 지주보다 마름이 더 지독하듯이, 명예백인이 되고 싶은 황인종들이 흑인들 대하는 꼴을 보면 참 가당찮다. 그래봤자 현실은 황인종 대부분이 '자영업'자로, 그러니까 자기 돈 끌고 와 퍼다 넣어서 겨우겨우 시민 행세하며 살아가는 데 반해, 흑인들은 엄연히 임노동 위계질서의 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관공서에서 민원을 상대하는 일이나 건물 출입관리, 대중교통 운전이나 레스토랑의 매니지먼트 등 단순사무직부터 기능직까지의 영역에서 흑인들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보다 저임금의 서비스 노동의 대부분은 히스패닉이 맡아 하는 구조랄까. 아시아계는 소수의 전문직과 대다수의 자영업, 그나마도 같은 아시아계를 상대하는 자영업이 대부분.

뭐 그건 그렇고. 난 어차피 아시아계 미국인도 아닌 외국인인지라 살짝 관망하는 포지션에 서있는데, 간혹 당혹스러운 일이 생기곤 한다. 관공서의 경비직이나 출입관리직도 대부분 흑인이 맡고 있고, 내가 들락거리는 곳도 거의 90%가 흑인인데, 간혹 이들이 출입자들을 알아서 구분지어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상하곤 한다. 예를 들어 평상시에는 출입카드를 잘 확인 안하는 정문에서 다른 백인 출입자는 그냥 들여보내고 나에게는 카드를 꺼내게 한다든지 하는 일들.. 혹은 대충 몇 주 연속 얼굴을 보다 보면 어느 선에서 생략되는 몇 가지 확인 절차들(특히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절차상의 절차들)이 꼭 내 앞에서는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들이 아시아계인 나를 더 감시의 대상으로 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웃긴건, 그런 상황에 뾰쪽하게 대응하는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이다. 지난 겨울에 한번, 어제 한번 두번에 걸쳐 거의 똑같은 반응에 황망한 웃음을 짓게 되었는데, 뭔고 하니.. 그 불편한 확인 절차에 날선 말투로 받아치는 내게 매우 순진한 표정으로 "어, 너 이 DVD레코더 어디서 샀니? 이거 컴퓨터 없이도 되는거야? 그거 산 곳 어딘지 알려줄 수 있어?" 이러고 묻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등록된 일련번호와 허용된 물품을 깐깐하게 확인하던 녀석이 이렇게 순진하게 내 물건에 호기심을 나타내면, 까칠한 반응을 준비하며 굳어있던 표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민망해지면서 허탈하게 웃게 된달까.

어쩌면 그게 그들의 처세술일 수도 있고, 처세술일 정도로 교활해 보이진 않으니 정말 순진한 사람들인 것도 같고. 非백인들에 대한 엄격함은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적응해버린 삶의 방편일지도 모르겠고.

2010년 2월 15일 월요일

교수회의 총기난사 사건

사실 생각해보면 총기소지가 허용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공포'는 이곳에 오기 전이 더 컸던 것 같다. 정작 여기서는 일상에 도처한 위험물로서의 '총'에 대한 곤두선 신경이 더 무뎌졌다고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놈의 나라는 입국하는 비행기 출발 전부터 액체반입이 안된다느니 커터칼도 못가지고 들어간다느니 하고, 입국수속 때는 알몸투시기까지 도입한다느니(다행히 나는 그 전에 입국했다만) 하면서 온갖 감시와 단속을 하면서도, 일단 들어와서 보면 그딴 것 다 딴 세계 얘기다. 지금도 도서관 한켠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 건물 안에 어느 누가 가슴팍에 총을 들고 있을지 알 수 없고, 그런 것에 대한 예방적 단속도 없다. 하긴 그런 예방적 단속이 일상 곳곳에 있다면 그야말로 판옵티콘이겠지. 지금 미국사회는 총기상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과, 그들의 입김을 막을 힘도 막을 의지도 없지만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만큼은 못견디는 리버럴들이 만들어놓은 묘한 균형 속에 있는 것이다. 총을 지닐 자유와, 총을 지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 자유.
그런 '자유'가 만들어놓은 기묘한 마취 속에 살아왔는지, 나 역시 '공포'의 대상이던 총에 대한 관심을 잃은지 꽤 되었다.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딴 생물학계에 꽤 알려진 조교수가 종신자격을 얻지 못해 교수회의에서 총기를 난사했다"는 대학원 사회에서 꽤 낯익은 직책과 상황이 '사건'의 정황으로 알려지고서야 다시 내 바로 옆에 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작년에 입국하고 초반에는 유학생들로부터 들었던 몇몇 사건들(단지 "거기 있었다"는 이유로 학교 앞 거리에서 총에 맞아 즉사한 아시아계 여학생의 이야기 같은) 때문에 한 동안은 밤에 나돌아다니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일상 속에서 재수없으면 마주칠 '교통사고' 같은 확률의 문제로 치부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상태가 총기상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정신상태인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