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시 전체가 "재즈가 생활이고 밥벌이에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공항 이름도 루이 암스트롱 공항이고, 셔틀버스나 식당, 가게 등등에서 재즈가 흘러나온다. 어제 가본 어떤 박물관에서 들은 설명으로는 '재즈 퓨너럴'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상을 당한 가족들이 밴드를 고용하고 신문에 장례식 광고를 내면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함께 재즈를 들으며 고인을 보내는 행사라고.
2.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상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 생활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담론은 넘쳐나는데,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가는 곳곳마다 "rebirth"나 "rebuild"의 구호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허리케인 시즌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라고 묻는 사보험 광고가 뻔뻔하게 라디오를 타는 것을 보면 재난의 기억은 공공성의 강화보다는 개인적인 불안과 공포를 돈과 맞바꾸는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흑인들이 많다는 것은 느꼈지만 도시 자체가 관광지로서 의미가 크다보니 그들 생활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밖에 접할 수 없었다. 버스마다 에이즈 관련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가난한 흑인 에이즈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간다는 현실이 여전히 진행형인 듯도.
4. Jazz & Heritage 페스티벌 최고 스타였던 Pearl Jam의 공연은 나에겐 악몽이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원격 공연을 시도한 '최초'의 공연이라던가. 사회자가 나와서 그 얘기를 하고 무대 양 옆의 스크린에 사막형 군복을 입은 부대원 열 명 남짓이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는 화면이 나온다. 순간 Pearl Jam을 보러온 수천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USA"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원격 공연 따위의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갔던 나는 그 순간 나치 전당대회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펑크한 차림의 자유로운 스타일의 젊은 관중들이 일제히 국가를 연호하는 그 순간의 아이러니란. 주최측만의 의도일 것이라 애써 위안하며 참아보려 했지만, 무대에 등장한 Pearl Jam 역시 "수고하는 장병들"에게 호의의 인사를 던지고 또 다시 "USA" 러시. 원래 같은 시간대에 다른 무대에서 진행되느라 얘네 공연 40분 정도 보고 중간에 들어가려 했던 Jeff Beck 공연으로 황급히 장소를 옮겼다. 다행히 그곳에선 그런 짓은 안 하더라는. 이번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제 Pearl Jam을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5. 재즈페스티벌의 그런 시도들, "rebuild, reuse, rebirth"라는 구호와 공공성을 경유한 국가적인 제스처들을 보면 이런 로컬 단위의 문화 산업이 Nation을 지탱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것 같다. 한국이 일상에서 Nation에 관한 담론으로 과포화되어 있다가 문화산업으로 가면 마치 그에 초탈한 마냥 '글로벌'한 어딘가로 탈주(?)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편이라면, 미국은 일상에서는 아무도 Nation을 말하지 않는데 오히려 저런 혼종적인 문화 이벤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USA가 압도하는 편이랄까.. 크레올이 어떻고, 시에라 리온의 난민들이 어떻고 하며 온갖 문화적 음악적 다양성으로 뻑쩍찌근하게 돌아가던 판에서의 최고 흥행공연이 저런 프로파간다로 귀결된다는 것이 참 씁쓸하더만. 마침 뉴욕에서 무슨 테러 모의가 있었니 하면서 공항마다 위험 수위가 높다는 표지판이 붙는 여전한 911의 지배 현장.
6. 남부의 보수성은 유명하지만 그래도 피부로 느낄 일들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미국 와서 처음으로 인종 때문에 모멸감을 느껴야 했던 일들이 두어 번 있었다. 아이러니인 것은 그렇게 마주쳤던 남부의 백인들 역시 "텍사스 레드넥" 따위의 호칭으로 멸시 받는, 교육 수준 낮고 소득 수준도 낮은 하층 계급이 많다는 것. 자신의 소수성에 대한 분노를 자기보다 못한 소수자들에게 해소하는 전형적인 사이클.
7. 유스호스텔은 참 신기한 곳인게, 그냥 혼자 구경하다 올 생각으로 갔던 여행에서 쌩판 처음보는 스물댓 살의 백인 애들 세 명과 친구가 되어 3일 동안 같이 돌아다니게 만들어주었다. 미시건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는 애들인데, 대학원생이 아닌 백인들과 이렇게 가깝게 지내보긴 또 처음이군.
아래는 사진. 재즈페스티벌은 동영상만 찍었는데 어쩔지 생각중.
루이암스트롱 공항 벽면에 부착된 그림. 저것 말고도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그림도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음.
미시시피강.
프렌치쿼터에 있는 건물들이 유명한데 찍고 나서보니 대부분 관광객들을 의식한 인위적인 건물들이 많았음. 이건 좀 다른 느낌.
줄 서서 들어가야 했던 유명한 재즈 클럽 "Preservation Hall"의 전속 밴드 공연.
"결연한 복수"를 외치는 정치인들은 후진 기어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 선동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고, 선동으로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이적" 혐의를 씌웠다. 이제 후퇴나 방향 선회는 지지세력을 깎아먹고 반대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UN안보리에 회부를 하든, 자기들 말마따나 "경제에 타격 없는 국지전"을 벌이든 "복수"는 이제 그들의 정치적 생명이 되었다. 설령 그 복수의 상대가 실제 사건의 주모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이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라도 그 사실은 감추고 또 폐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답은 하나 밖에 없다. 복수! 복수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복수!
"정치의 자유"를 외치는 정치인들에게도 후진 기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 정보의 무단 공개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추궁과 법적 강제에 따른 "파산 공포"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소신"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설령 위헌 행위임이 판명 나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더라도 지지세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끝까지 투쟁하다 산화하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다. 이제 적은 법치질서 그 자체에 있다. 법을 쳐서 치의 무한한 자유를 얻겠다는 그들의 고귀한 소신 앞에 남은 정답 역시 하나다. 파괴! 파괴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도 파괴!
문제는 그들의 복수와 파괴가 지난 세기와는 달리 어떤 "결연한 질서"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부흥을 통한 공공의 발전이라는 신화는 땅바닥에 던져진지 오래이고, "애국"이 그저 어떤 공고한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한 이해타산에서 나온 구호임은 이제 어지간한 필부도 아는 세상이다. 복수와 파괴의 구호 아래 모인 지지자들도 숭고한 무엇인가를 지키고자 내 한몸 희생하려는 진지하고 융통성 없는 꼰대들이 아니라, 그 구호를 통해 내 잇속 침범하는 자들을 속아내자는 잔머리 따라 움직이는 뜨내기들일 뿐이다. 책임질 이 없는 구호는 공허하게 떠올랐지만, 후진기어도 브레이크도 없이 한껏 팽창할 뿐이고, 이제 이것이 어떻게 터질 것인지 우울하게 지켜볼 일이다.
페이퍼 하나 남겨 두고 오늘 드디어 종강했다. 극장에서 영화본 것은 《아바타》가 마지막이었던 듯. 몰아서 《인생은 아름다워》 두 회분을 보고 몇 사람과 통화를 했다. 한국 시각으로 어제 이형표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지금도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다. "멋스럽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노신사였고, 또 여기서 말동무를 해드리고 있는...이라기보다는 거의 일방적인 말 세례를 받아드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돌아가면 꼭 찾아뵙고 멀리 떨어져 만나기 힘든 두 노인의 다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품어왔던 분인데... 참 기분이 그렇다. 요즘 추세로 따져도 오래 사신 편이고 또 긴 지병 같은 것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애써 슬픔을 덜어보려하는 것도 같다만, 내가 그 연세가 된다고 해도 사실 "오래 살아서 미련 없는 생" 따위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일 것임을 알기 때문에 계속 먹먹한 상태다. 못 들은 이야기, 1차 자료 없는 그 자체로 유일한 사료라 할, 기록 못한 얘기들도 많은데 한 '역사'가 그냥 통째로 사라져버린 느낌도 들고... 오랜 친구가 긴 고통 없이 떠났다는 소식에 애써 위안을 찾으려 드는, 이곳에 남은 비슷한 나이의 노인도 눈에 밟힌다. 다음 주는 바쁘지만 그래도 또 찾아 뵈려고 한다.
여기 연구실 라운지(?)의 한쪽 벽면은 꽤 재미있는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책장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연구자들이 1년 혹은 1년 반씩 머무르면서 보던 책을 돌아갈 때 기증하고 간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취향도 각양각색이고 연속간행물도 다섯 권 넘게 있는 경우가 잘 없다. 오늘 혼자 밤새다 쉬는 중에 한권 눈에 들어왔는데 『당대비평』 2003년 여름호다. 다른 곳에서 봤으면 그냥 지나갔을 테지만 여기 있는 단 한권의 당대비평, 그리고 그해 여름에 여기를 지나쳐갔을 어느 연구자가 봤던 책이라 하니 호기심이 생겨 들여다보게 되었다. 시작한지 얼마 안된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진 특집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 당시에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 김대중'의 10년이 '잃어버린' 기간이었다는 것인데, 아마 그 영감들 입장에서는 5년 더 지나고 보니 앞쪽 5년은 잃어버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렇다고 똑 같은 표현을 그대로 당겨쓰다니 참으로 실용적이로고! 뭐 암튼 이미 그때부터 노무현의 실책들은 드러나고 있는 중이었고, 윤평중이 "지배세력의 교체"를 위한 싸움이라고 봤던 그 정부의 초기 행보들은 그보다는 개뿔 "헤쳐모여"의 판타지와 그 환각 이면에서의 지능적인 지배계급 재결집에 판을 깔아주고 있었다. 당시의 논자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얼마 전에 본 아룬다티 로이의 글도 있었는데, 경악스러운 세계의 상태에 대한 고발의 어조가 주를 이루는 그녀의 논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고발해야할 내용이 7년이 지난 지금 더 많이 생겨난 것이 차이랄까. 오바마의 세계도 911 이후 부시의 세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으니. 한국에 왔던 요한 갈퉁과 마이클 하트의 대담도 있었고(각기 따로), 그 당시 노동에 관한 꽤 신선한 담론이었던 "노동사회"에 대해 홀거 하이데가 특별 기고를 하기도 했네. 독자 투고란에는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어느 낯익은 이름이 있었고, 문화비평란에는 당시로서는 가장 뜨거운 영화였을 《살인의 추억》에 대한 비평이 있었다. 그때 난 뭘 했나.. 생각해봤다. 아마 가장 혼란스러운(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시기였던 것 같다. 여러 사람들과 '새로운' 시도들을 했던 것도 같고,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어리버리 했던 것도 같고. 당대비평의 영화평론을 보니, 같이 세미나 하던 후배들과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나왔더니 한 여자 후배가 "보는 내내 무서웠다"고 했던 것도 기억나네. 시간 참 빨리 간다.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이 희뿌옇게 보이던 것도 어제 같은데, 그러고도 반년 뒤에 있었던 일들이 이렇게 회고의 대상이 되다니. 그때 당대비평을 봤던 저 연구자는 지금 무슨 연구를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