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프간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다가 납치된 사람들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전쟁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때 나의 논지는 "분쟁 지역에서의 민간인 구호와 의료봉사 활동은 새로운 전쟁의 중요한 시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놓을 수 없는 인도적 가치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더해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은 "분쟁 지역에서의 민간 외국인 납치는 협상 자금이 오가는 단기적 시장으로서 뿐 아니라 지속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파생상품 시장을 창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신흥 산업이란 무엇이냐. 바로 이교도로부터의 탈출기, 21세기판 탈애굽기다. 식민주의의 유구한 전통은 이미 12~13세기 때부터 이교도의 땅을 누비는 견문록과 여행서들로 출판시장에서 짭짤한 수익을 창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에서 클릭질만 몇 번 하면 아마존 오지 탐험도 좌르륵 코스가 나오는 마당에 그저 평범한 견문록으로 시장에서 주목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전쟁의 시대는 이처럼 답보상태에 놓인 출판 시장에도 블루오션을 제시한다.
주체신을 믿는 김씨 왕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알라신을 믿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이나 "건전한" 미합중국의 시민들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대상"이지만, 공포는 다른 한편으로 아주 잘 팔리는 상품이기도 하다. 언론인의 본분은 "다른 것 필요 없고 그저 주목받기"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로라 링과 유나 리 씨는 작년 김씨 왕조의 소굴로 직접 잠입하는 글로벌 스펙터클로 클린턴 남편까지 캐스팅에 성공하는 큰 흥행을 거두었는데, 어느덧 우리는 그 두 "기자"분들의 수기를 아마존닷컴에서 주문할 수 있다. 단독 주연이 아닌 더블캐스팅으로 대박 친 것이 못내 아까웠는지 두 사람은 책을 따로 냄으로써 소득을 쪼개는 불쾌함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Somewhere Inside: One Sister's Captivity in North Korea and the Other's Fight to Bring Her Home』, 『The World Is Bigger Now: An American Journalist's Release from Captivity in North Korea . . . A Remarkable Story of Faith, Family, and Forgiveness』). 애초에 김씨왕조의 "미개한" 이교도들도 감히 미합중국의 기자님들을 해할 수는 없었을 터, 저 현명한 두 아시안 아메리칸은 블루오션을 선점하여 올라앉을 돈방석을 찾았다.
이에 질세냐. 하나님의 나라 미합중국을 본보기로 열심히 토착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삽의 민족"에게도 기회는 있다. 다만 이곳은 "유교 자본주의"라 자처하는 "사우스 코리아"이니 로라나 유나처럼 닥치고 알라딘닷컴에 올리지 못하는 불편함은 있다. 유교 역시 이교도의 신앙이니 두고두고 멸시해주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 기독교 주식회사의 사업가들은 유교가 만들어놓은 "체면"과 "명분"의 질서를 산업적 기반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필요한 것은 대놓고 상품을 진열대에 올려놓는 일이 아니라, 돈 낼 사람들과 돈 거둘 사람들을 조직하고 "유교적" 질서 속으로 밀어넣는 일이다. 비매품인 아프간 탈출기가 돈 벌어주는 상품이 될 수 있는 바탕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은평을 선거
사회당 금민 은평을 후보가 진보신당 서울시당의 공식 지지를 받았다. 아마도 이것은 이번 재보궐 선거로 그치지 않고, 향후의 통합 진보정당 논의에 상당히 큰 바탕이 될 것이다. 진보신당은 이번 결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오른쪽에 있는 민노당 뿐 아니라 왼쪽에도 정당이 하나 더 있다고 최초로 인정한 셈이다. 여기까지 오는데는 김수행, 김세균, 손호철 같은 좌파 교수들과 이갑용 등 진보신당 밖 좌파들의 압박이 컸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변수로는 심상정의 사퇴를 중심으로 한 당내 우파의 커밍아웃과 그에 대한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노무현의 자살을 통한 자유주의 우파의 결집과 그들이 '진보'라는 레토릭을 선점하며 만들어낸 반MB전선의 단기적 승리가 있을테고. 정치적 변동이란 것이 얼마간의 필연과 또 얼마간의 우연(이를테면 노무현을 등에 업은 자유주의 우파의 기사회생 같은)이 만들어내는 균형점에서 이루어진다고 요즘은 생각하지만, 아마도 사회당 사람들은 지금쯤 자신들이 만들어낸 결과를 "역사적 필연"으로 설명하고 한껏 고취되어 있을 것이다. 우희종, 우석훈, 최영미 등의 지지유세나 아르바이트생 88인 지지 선언 등 선거운동도 나름 아기자기하게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사진으로 보이는 선거운동원들은 정말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조직노선이 싫어서, 아니 그 조직문화와 필연적(!)으로 맞닿아있는 정치 노선에 회의를 느끼고 결별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들의 기쁨에 함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마 그들로서는 20년 넘게 취해온 노선이 사상 처음으로 현실화된 순간일 것이다.
그들의 조직노선이 싫어서, 아니 그 조직문화와 필연적(!)으로 맞닿아있는 정치 노선에 회의를 느끼고 결별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들의 기쁨에 함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마 그들로서는 20년 넘게 취해온 노선이 사상 처음으로 현실화된 순간일 것이다.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미국에서 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의 편치 않은 관계의 대부분은 아시아계 탓이다. 직장에서 중간관리자가 더 악랄하고, 지주보다 마름이 더 지독하듯이, 명예백인이 되고 싶은 황인종들이 흑인들 대하는 꼴을 보면 참 가당찮다. 그래봤자 현실은 황인종 대부분이 '자영업'자로, 그러니까 자기 돈 끌고 와 퍼다 넣어서 겨우겨우 시민 행세하며 살아가는 데 반해, 흑인들은 엄연히 임노동 위계질서의 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관공서에서 민원을 상대하는 일이나 건물 출입관리, 대중교통 운전이나 레스토랑의 매니지먼트 등 단순사무직부터 기능직까지의 영역에서 흑인들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보다 저임금의 서비스 노동의 대부분은 히스패닉이 맡아 하는 구조랄까. 아시아계는 소수의 전문직과 대다수의 자영업, 그나마도 같은 아시아계를 상대하는 자영업이 대부분.
뭐 그건 그렇고. 난 어차피 아시아계 미국인도 아닌 외국인인지라 살짝 관망하는 포지션에 서있는데, 간혹 당혹스러운 일이 생기곤 한다. 관공서의 경비직이나 출입관리직도 대부분 흑인이 맡고 있고, 내가 들락거리는 곳도 거의 90%가 흑인인데, 간혹 이들이 출입자들을 알아서 구분지어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상하곤 한다. 예를 들어 평상시에는 출입카드를 잘 확인 안하는 정문에서 다른 백인 출입자는 그냥 들여보내고 나에게는 카드를 꺼내게 한다든지 하는 일들.. 혹은 대충 몇 주 연속 얼굴을 보다 보면 어느 선에서 생략되는 몇 가지 확인 절차들(특히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절차상의 절차들)이 꼭 내 앞에서는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들이 아시아계인 나를 더 감시의 대상으로 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웃긴건, 그런 상황에 뾰쪽하게 대응하는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이다. 지난 겨울에 한번, 어제 한번 두번에 걸쳐 거의 똑같은 반응에 황망한 웃음을 짓게 되었는데, 뭔고 하니.. 그 불편한 확인 절차에 날선 말투로 받아치는 내게 매우 순진한 표정으로 "어, 너 이 DVD레코더 어디서 샀니? 이거 컴퓨터 없이도 되는거야? 그거 산 곳 어딘지 알려줄 수 있어?" 이러고 묻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등록된 일련번호와 허용된 물품을 깐깐하게 확인하던 녀석이 이렇게 순진하게 내 물건에 호기심을 나타내면, 까칠한 반응을 준비하며 굳어있던 표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민망해지면서 허탈하게 웃게 된달까.
어쩌면 그게 그들의 처세술일 수도 있고, 처세술일 정도로 교활해 보이진 않으니 정말 순진한 사람들인 것도 같고. 非백인들에 대한 엄격함은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적응해버린 삶의 방편일지도 모르겠고.
뭐 그건 그렇고. 난 어차피 아시아계 미국인도 아닌 외국인인지라 살짝 관망하는 포지션에 서있는데, 간혹 당혹스러운 일이 생기곤 한다. 관공서의 경비직이나 출입관리직도 대부분 흑인이 맡고 있고, 내가 들락거리는 곳도 거의 90%가 흑인인데, 간혹 이들이 출입자들을 알아서 구분지어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상하곤 한다. 예를 들어 평상시에는 출입카드를 잘 확인 안하는 정문에서 다른 백인 출입자는 그냥 들여보내고 나에게는 카드를 꺼내게 한다든지 하는 일들.. 혹은 대충 몇 주 연속 얼굴을 보다 보면 어느 선에서 생략되는 몇 가지 확인 절차들(특히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절차상의 절차들)이 꼭 내 앞에서는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들이 아시아계인 나를 더 감시의 대상으로 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웃긴건, 그런 상황에 뾰쪽하게 대응하는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이다. 지난 겨울에 한번, 어제 한번 두번에 걸쳐 거의 똑같은 반응에 황망한 웃음을 짓게 되었는데, 뭔고 하니.. 그 불편한 확인 절차에 날선 말투로 받아치는 내게 매우 순진한 표정으로 "어, 너 이 DVD레코더 어디서 샀니? 이거 컴퓨터 없이도 되는거야? 그거 산 곳 어딘지 알려줄 수 있어?" 이러고 묻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등록된 일련번호와 허용된 물품을 깐깐하게 확인하던 녀석이 이렇게 순진하게 내 물건에 호기심을 나타내면, 까칠한 반응을 준비하며 굳어있던 표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민망해지면서 허탈하게 웃게 된달까.
어쩌면 그게 그들의 처세술일 수도 있고, 처세술일 정도로 교활해 보이진 않으니 정말 순진한 사람들인 것도 같고. 非백인들에 대한 엄격함은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적응해버린 삶의 방편일지도 모르겠고.
2010년 7월 1일 목요일
창법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 2
신중현 옹께서 은퇴공연 이후에 오랜만에 무대에 서신단다([공연정보]). 이번에도 못가보는 것이 무척 아쉽다만, 공연 소개 문구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찾게 되어 옛날에 쓴 글을 생각나게 하는구나.
그러고보니 이번에는 올곧은 창법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아래는 예전 블로그에서 가장 방문수가 높았던 문제의 글 ㅋ
창법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
신중현과 박정희 정권 사이의 유명한 일화로, 그의 대표작인 [아름다운 강산]의 탄생 비화가 있다. 당시 여러 가수들을 통해 히트곡을 만들어냈던 신중현에게 집권당이던 공화당에서 전화를 걸어와 박통 찬가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신중현은 잠시 고민하고는 거절했고, 조금 뒤에 청와대에서 비슷한 전화가 걸려왔으나 역시 거절했다고 한다. 신중현을 비롯한 록뮤지션들을 대거 철창 속에 가두었던 대마초 파동은 이미 그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데, 어찌 되었든 권력의 주문을 연거푸 거절한 입장에서 신중현은 이 곡을 만들었다.
작사 신중현
작곡 신중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나뭇잎 푸르게 /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 달려보자 저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 말해보자 새희망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우리는 이땅위에 /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찬란하게 빛나는 / 붉은태양이 비추고
하얀물결 넘치는 / 저바다와 함께 있네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사랑하는 그대와 / 노래하리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먼훗날에 / 너와나 살고지고
영원한 이곳에 / 우리의 새꿈을
만들어 / 보고파
봄여름이 지나면 / 가을겨울이 온다네
아름다운 강산
너의 마음은 나의 마음 /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
너와 나는 한마음 / 너와나
우리 영원히 영원히 / 사랑 영원히 영원히
우리 모두다 모두다 / 끝없이 다정해
가사로만 보면 너무도 노골적인 국가 예찬이지만, 그 속에는 직설어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어와 역설이 숨겨져 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김정미가 부른 버전이다. 중앙정보부로부터 '퇴폐적인 창법'으로 지목받았던 그녀는 이 곡에서도 퇴폐미를 마음껏 발산한다. 가령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부분에서 콧소리가 섞여 울리는 부분에 이르면 가사의 내용과 창법이 묘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여가수의 색기 어린 창법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을 얼마나 곤혹스럽게 했을지 짐작해보라.
김정미 버전의 반어법을 증명해주는 것은 그 정반대편에 있는 이선희 버전이다. 맑은 목소리와 내지르는 창법의 이선희는 직설적인 가사를 직설적인 창법으로 배가시킨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이 강산이 아름답고 '선진조국의 드높은 기상'이 한껏 와닿는 느낌이다. 반어법을 무력화시키는 이 모범생 가수의 단정함!
그녀의 단정함은 산울림의 단정함이 의도했던 은근한 조롱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야말로 순도 100%의 단정함. 이것은 이후 그녀의 정치적 선택과도 연속선상에 있다. '퇴폐적'인 의도로 탄생된 이 곡이 어느새 이선희라는 '국민가수'의 대표곡으로 탈바꿈한 데에는, 그런 단정함을 사랑했던 권력과 언론의 부추김 또한 있었음을 쉽게 추리해 낼 수 있다.
두 가수, 두 창법이 빚어내는 이 차이가 내가 김정미를 듣고 또 듣는 이유다.
락의 저항정신
1970년대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갖은 탄압속에서도 ‘락’의
저항정신을 고수했던 그.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가 발표한 ‘아름다운 강산’은 ‘4대강 사업’과 맞물려 환경보전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에 특히 가슴에 와닿는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나뭇잎 푸르게/강물도
푸르게/아름다운 이 곳에 네가 있고 내가 있네”
이번 무대에서는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이 곡을 부릅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는 올곧은 창법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아래는 예전 블로그에서 가장 방문수가 높았던 문제의 글 ㅋ
창법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
신중현과 박정희 정권 사이의 유명한 일화로, 그의 대표작인 [아름다운 강산]의 탄생 비화가 있다. 당시 여러 가수들을 통해 히트곡을 만들어냈던 신중현에게 집권당이던 공화당에서 전화를 걸어와 박통 찬가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신중현은 잠시 고민하고는 거절했고, 조금 뒤에 청와대에서 비슷한 전화가 걸려왔으나 역시 거절했다고 한다. 신중현을 비롯한 록뮤지션들을 대거 철창 속에 가두었던 대마초 파동은 이미 그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데, 어찌 되었든 권력의 주문을 연거푸 거절한 입장에서 신중현은 이 곡을 만들었다.
작사 신중현
작곡 신중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나뭇잎 푸르게 /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 달려보자 저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 말해보자 새희망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우리는 이땅위에 /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찬란하게 빛나는 / 붉은태양이 비추고
하얀물결 넘치는 / 저바다와 함께 있네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사랑하는 그대와 / 노래하리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먼훗날에 / 너와나 살고지고
영원한 이곳에 / 우리의 새꿈을
만들어 / 보고파
봄여름이 지나면 / 가을겨울이 온다네
아름다운 강산
너의 마음은 나의 마음 /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
너와 나는 한마음 / 너와나
우리 영원히 영원히 / 사랑 영원히 영원히
우리 모두다 모두다 / 끝없이 다정해
가사로만 보면 너무도 노골적인 국가 예찬이지만, 그 속에는 직설어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어와 역설이 숨겨져 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김정미가 부른 버전이다. 중앙정보부로부터 '퇴폐적인 창법'으로 지목받았던 그녀는 이 곡에서도 퇴폐미를 마음껏 발산한다. 가령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부분에서 콧소리가 섞여 울리는 부분에 이르면 가사의 내용과 창법이 묘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여가수의 색기 어린 창법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을 얼마나 곤혹스럽게 했을지 짐작해보라.
김정미 버전의 반어법을 증명해주는 것은 그 정반대편에 있는 이선희 버전이다. 맑은 목소리와 내지르는 창법의 이선희는 직설적인 가사를 직설적인 창법으로 배가시킨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이 강산이 아름답고 '선진조국의 드높은 기상'이 한껏 와닿는 느낌이다. 반어법을 무력화시키는 이 모범생 가수의 단정함!
그녀의 단정함은 산울림의 단정함이 의도했던 은근한 조롱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야말로 순도 100%의 단정함. 이것은 이후 그녀의 정치적 선택과도 연속선상에 있다. '퇴폐적'인 의도로 탄생된 이 곡이 어느새 이선희라는 '국민가수'의 대표곡으로 탈바꿈한 데에는, 그런 단정함을 사랑했던 권력과 언론의 부추김 또한 있었음을 쉽게 추리해 낼 수 있다.
두 가수, 두 창법이 빚어내는 이 차이가 내가 김정미를 듣고 또 듣는 이유다.
2010년 6월 7일 월요일
서사가 빈곤해지면 이국을 착취하라: 《섹스 앤 더 시티 2》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섹스 앤 더 시티 2》는 《Sex & the Desert》다. 뉴욕이 나오긴 하지만 이 영화는 뉴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런던의 올드미스 브리짓이 결혼하고 할 말 없어지자 태국으로 날아갔듯이, 뉴욕의 前올드미스 캐리는 두바이로 날아간다. 결혼의 중압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달아난 세 여자의 얘기는 pc하지만 힘이 없고, 홀로 꼿꼿이 싱글 섹스 라이프를 즐기는 사만다는 과장되다 못해 괴물로 묘사되고 있다. 맨하탄의 복잡한 일상과 의무들 속에서 절제 없이 소비하는 그녀들이 갖던 일말의 도발성은 이국의 낯선 존재들 앞에서의 과시적 소비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녀들의 '속깊은 게이친구'들이 결혼하며 시작하는 도입부가 주는 착취의 불쾌감 역시 이국을 착취하는 중반부의 불쾌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막판에서 캐리든 누구든 돌씽으로 만들며 끝냈다면 조금이나마 만회가 되었겠지만 후반에서마저 갈등 수습과 봉합에 급급한 이 영화는 너무 멀리 갔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진보신당
아래 글은 심상정이 사퇴 발표하기 하루 전날, 그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서 올렸다가 황급히 지운 글이다. 무능한 한명숙이 예상치 못한 선전을 한 것을 보고 결과론적으로 판단하여 노회찬에 대해 원망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의 판세에서 여러모로 동떨어져 있는 소리로 보이겠지만,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다시 이 글을 올린다. 심상정의 사퇴는 대단히 유감이지만 진보정당 내에서의 "정치인"과 평당원의 관계, 당내 민주주의와 표상의 문제에 대한 '자칫 잊을 뻔한' 화두를 되돌려 줬다는 점에서 아픈 소득이다.
그리고, 노빠들은 그 아가리 좀 닥치라. 떠다주는 숟가락도 제 입에 못넣을 정도로 무능한 前 이라크 전범 총리가 번드르한 외모빨과 사기꾼의 풍모를 풍기는 말빨로 무장한 개발주의자에게 발린 것을 두고, 왜 전쟁도 반대하고 개발도 반대하는 사람에게 와서 원망질이냐 원망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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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지지와 담론 정치
진보신당이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두 상징적 정치인을 단체장 선거에 배치한 것을 두고 '소모'라 평가하는 이도 있고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신당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독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악담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진보신당을 넘어서 이른바 '진보정당' 운동이라는 것을 해온 이들에게 무척 의미 있는 연대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있었던 진보 지식인 107명 진보신당 지지선언을 보면 그간 이런 형식의 지지선언에서 보기 힘들었던 이름이 종종 보인다.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말하며 제도권 내의 의회정당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김세균, 들뢰즈 푸코 이후로는 정치운동에서 탈주한 것처럼 보이던 이진경, 소위 '문화운동'의 바운더리를 만들고서 정당운동과는 거리두기를 해왔던 강내희와 문화이론의 멤버들이 그들이다. 그런가 하면 진보신당과의 연대 문제로 분당 위기까지 겪었던 사회당 역시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평을 재선거를 준비중인 금민 전 대표가 24일 진보신당 수도권 후보 지지 선언을 했고, 인천시당도 28일 진보신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것은 "좌파라면 진보신당 밑으로 대동단결" 이런 것이 실현되었다기보다는 정당운동이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이제야 비로소 진보정당 운동의 바른 판세가 그 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민노당의 반MB 연대를 조롱하고 또 누군가는 비웃지만, 내 심정은 그들의 '솔직한' 행보가 너무나 고맙고 또 반갑다. 애초에 진보정당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달랐던 사람들이고, 지금의 행보 역시 그들의 정체성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고 진지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민노당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간 그들과 섞여 있느라 괴상한 모양새로 엎치락 뒤치락 했던 진보정당 운동의 10년 역사가 아깝다면 아까울까.
진보정당은 '혁명'용 정당이 아니다. 혁명은 누군가가 기획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잠정적인 내 견해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혁명적 모멘텀이 형성된다면, 그것이 내셔널리즘이나 인종주의, 반공주의나 패권주의, 정치적 냉소주의나 반지성주의로 오염되어 왜곡되고, 종국에는 혁명이 아닌 반혁명, 변혁이 아닌 근본적 회의로 치닫지 않기 위한 "준비된" 담론지형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정당 운동이 그런 혁명적 상황을 '준비'하는 운동 역시 아닐 것이며, 그보다는 그 "담론의 지형"을 만드는 데 중요한 한 축이 되는 운동이 될 테다. 얼마 안되는 TV토론 출연으로 각광을 받는 심상정, 노회찬의 정책 공약들과, 꽤나 흡인력 있게 잘 설계된 사회당의 '기본소득' 정책은 그런 담론 정치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빠들은 그 아가리 좀 닥치라. 떠다주는 숟가락도 제 입에 못넣을 정도로 무능한 前 이라크 전범 총리가 번드르한 외모빨과 사기꾼의 풍모를 풍기는 말빨로 무장한 개발주의자에게 발린 것을 두고, 왜 전쟁도 반대하고 개발도 반대하는 사람에게 와서 원망질이냐 원망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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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지지와 담론 정치
진보신당이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두 상징적 정치인을 단체장 선거에 배치한 것을 두고 '소모'라 평가하는 이도 있고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신당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독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악담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진보신당을 넘어서 이른바 '진보정당' 운동이라는 것을 해온 이들에게 무척 의미 있는 연대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있었던 진보 지식인 107명 진보신당 지지선언을 보면 그간 이런 형식의 지지선언에서 보기 힘들었던 이름이 종종 보인다.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말하며 제도권 내의 의회정당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김세균, 들뢰즈 푸코 이후로는 정치운동에서 탈주한 것처럼 보이던 이진경, 소위 '문화운동'의 바운더리를 만들고서 정당운동과는 거리두기를 해왔던 강내희와 문화이론의 멤버들이 그들이다. 그런가 하면 진보신당과의 연대 문제로 분당 위기까지 겪었던 사회당 역시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평을 재선거를 준비중인 금민 전 대표가 24일 진보신당 수도권 후보 지지 선언을 했고, 인천시당도 28일 진보신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것은 "좌파라면 진보신당 밑으로 대동단결" 이런 것이 실현되었다기보다는 정당운동이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이제야 비로소 진보정당 운동의 바른 판세가 그 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민노당의 반MB 연대를 조롱하고 또 누군가는 비웃지만, 내 심정은 그들의 '솔직한' 행보가 너무나 고맙고 또 반갑다. 애초에 진보정당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달랐던 사람들이고, 지금의 행보 역시 그들의 정체성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고 진지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민노당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간 그들과 섞여 있느라 괴상한 모양새로 엎치락 뒤치락 했던 진보정당 운동의 10년 역사가 아깝다면 아까울까.
진보정당은 '혁명'용 정당이 아니다. 혁명은 누군가가 기획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잠정적인 내 견해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혁명적 모멘텀이 형성된다면, 그것이 내셔널리즘이나 인종주의, 반공주의나 패권주의, 정치적 냉소주의나 반지성주의로 오염되어 왜곡되고, 종국에는 혁명이 아닌 반혁명, 변혁이 아닌 근본적 회의로 치닫지 않기 위한 "준비된" 담론지형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정당 운동이 그런 혁명적 상황을 '준비'하는 운동 역시 아닐 것이며, 그보다는 그 "담론의 지형"을 만드는 데 중요한 한 축이 되는 운동이 될 테다. 얼마 안되는 TV토론 출연으로 각광을 받는 심상정, 노회찬의 정책 공약들과, 꽤나 흡인력 있게 잘 설계된 사회당의 '기본소득' 정책은 그런 담론 정치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팻 메스니: 19세기말적 기계미학 혹은 백인-개인적 임프로비제이션의 완성
팻 메스니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예매를 했을 적만 해도 "오케스트리온"이라는 새 앨범+투어의 명칭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팻 옹의 열혈팬임을 인정 받아 이번 투어의 공식 티셔츠 디자인으로까지 채택된 만화가 눈고양이 화백의 그림을 보고서야 그게 1인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가 공연일인 20일에야 드디어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서 놀라움에 감탄 연발을 멈추지 못했다.
그래도 역시 좋긴 좋았다는..
사진으로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잘 전달이 안되는데, 저 자동연주 기계들에 둘러싸인 팻 옹은 그야말로 실험실의 과학자의 포스를 풍겼다. 전자 신호로 움직이는 각각의 기계들은 신호를 받을 때마다 빛을 발했고, 저 냥반은 그게 너무나 자랑스러운지 신모델 로봇 전시회에 나온 박사과정마냥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고 설명을 해댔다. ㅋ 같이 간 선배 말마따나 연주실력이 받쳐주지 않고 그저 저런 실험만 했다면 헐렁했을텐데 실력마저 출중하니 여러모로 흡족한 연주(혹은 퍼포먼스?ㅋ)였다.
다만 팻 옹 본인이 저런 구상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해주는데 그제서야 그의 음악세계가 재즈의 시원으로부터 저 멀리 다른 어딘가로부터 유래하여 잠시 재즈를 경유했다가 다시 다른 차원으로 떠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살배기 시절 할아버지의 자동연주 피아노에 꽂혔던 것이 이 모든 사단의 배경이라며 그는 9살의 꿈을 머금게 해주었던 1920년대 뮤지션들의 자동연주 기계 실험에 대해 오마주를 던졌다. 정확히 말하면 18세기의 자동인형과 19세기 말의 기계미학의 산물이었을 저 꿈은 19세기 말에 뉴올리언즈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재즈와는 전혀 다른 미학, 판이하게 다른 인간관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출중한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중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각각의 임프로비제이션이 자유롭게 들어가고 빠져나가는 절묘한 재밍의 팀웍과 공동체적 인간관의 산물인 정통 재즈와, 프로그래밍된 자동기계-악기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통해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극대화하는 팻 옹의 재즈는 이미 다른 장르를 넘어 다른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빌 에반스, 키스 자렛, 얀 갸바렉 등의 백인 재즈를 통해 그 뿌리를 만들었던 이 사색적인 개인 음악은 19세기적 기계미학의 이상과 결합하면서 성공적으로 그 숙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구조조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기계에 밀려 이번 투어에서 제외된 팻메스니 그룹의 다른 세션들을 생각하니 잠시 러다이트 운동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역시 좋긴 좋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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