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King Crimson Radical Action 2017 Tour - Austin, TX

더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남긴다. 여기 들어오는 사람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기록을 위해.

2017년 10월 19일 UT Austin의 Bass Concert Hall에서 킹크림슨의 2017년 북미 투어의 하반기 첫 공연이 있었다. 차로 왕복 5~6시간 걸리는 곳이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아예 다시는 이들의 공연을 못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루 숙박까지 곁들여 예매를 했더랬다. 예매 시작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아주 좋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석에서 뮤지션들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정도의 거리라서 나름 만족스러운 자리였다.

유년 시절부터 킹크림슨을 좋아해왔다고는 해도 사실 멤버 교체나 2000년대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큰 관심 없이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공연을 가기 전에 준비차 찾아본 최근 활동상은 사실 조금 걱정을 끼치는 것이었다. 근 30년 넘게 프론트맨으로 서왔던 리드 보컬 Adrian Belew가 Robert Fripp에게 재계약 없음 통보를 받고 2013년 퇴출되었다는 것은 뭔가 메탈리카 생각도 나고 좀 거시기했다. 과연 새 보컬이 킹크림슨 특유의 음색을 소화해낼 것인가.


미국 락 콘서트는 대부분 판매시에 적혀 있는 시각보다 최소 30분에서 최대 1시간반 뒤에야 본 밴드가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급이 낮은 다른 밴드가 먼저 공연을 하기도 하고, 공연장을 오픈해두고 관객들이 술 사고 기념품 사고 화장실 다녀오는 동안 30분 가까이 배경음악만 깔아놓기도 한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줄 알았던 나는 8시 공연에 8시 조금 넘어 도착해서 데킬라 한 잔 줄 서서 주문하고, 기념품 부스도 구경하고는 10분쯤 어슬렁어슬렁 들어갔다. 아직도 한 20분은 남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런데 웬걸, 이미 그들이 무대 위에 있었고 관객들은 대부분 착석하여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행히 첫 곡 시작 직전에 아슬하게 착석.

공연이 끝나고 찾아보니 로버트 프립이 어느 인터뷰에서 이번 투어를 "a double quartet formation"이라고 말했다 한다. 8인으로 된 현재의 밴드 라인업을 두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무대를 정확이 대칭으로 가르는 배치를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저 표현을 보면서 동시에 이들이 new classic으로 남고자 하는 욕망을 읽었다. 클래식 공연처럼 거의 정시에 시작하여 중간에 한번의 인터미션을 거쳐 공연 종결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그 흔한 밴드 멤버 소개조차 하지 않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명확히 했다. 엄격하게 통제된 가이드라인에 따라 촬영은 철저히 금지되었고.

각설하고, 아니 저런 짜잘한 곁다리 평가질은 차치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아마도 내 생애 최고의 공연이 아니었을까 한다. 과연 생애 최고라고 말해도 될지 머릿속을 스캔해봤는데, 아직 현역이시던 알 그린을 코 앞에서 본 2009년 공연, 완전체 산울림에게 직접 사인을 받은 1997년 공연 정도가 떠올랐으나... 무대에서 구현되는 퍼포먼스의 짜임새와 무게감을 봤을 때 과연 생애 최고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아니, 이런 걸 어디 동영상으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동영상으로 담아도 느낄 수 없겠지.

우선 가장 놀라웠던 것은 무대 앞 열을 세 대의 드럼 셋이 채웠다는 것이다. 첫 곡부터 이 세 드러머의 드러밍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정말 폭발이라고 말 할 수밖에. 그런데 이게 그냥 단순히 한 두 대의 드럼 셋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세 드러머가 각기 다른 색깔로 잼을 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사이로 찌르듯이 들어오는 프립의 기타와 레빈의 베이스는 현란함과 과학적 정교함을 동시에 구현했다고 말할 밖에.

2013년부터 프론트맨이 된 Jakko Jakszyk의 보컬도 신기하게 초기 킹크림슨을 연상케 하는 음색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이 공연의 유일한 옥의 티가 그의 Epitaph였을텐데(고음 처리가 안되는 것인지 고음역을 고의로 피했다), 그것 빼고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보컬이었다. 

이 날의 최고 연주는 아마도 Starless였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이 가장 감동적이었고... 콘서트에서 순수하게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 것은 이 곡이 처음이었다. Moonchild에 연이어 나온 연주였는데, 시작부터 탄식을 멈출 수가 없었다. 21st Century Schizoid Man 없이 공연이 끝날 분위기가 되자 관객들은 "Schizoid!"를 연발하기 시작했고, 결국 얻어냈다. 공연이 그 곡으로 끝났다는 것도 뭔가 꽉찬 느낌. 

공연이 끝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는데(이미 11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 적발시 퇴장된다는 문구가 더 이상 무섭지 않은 것은 장점이었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밴드가 퇴장하기 전에 찍기 위해 모두 폰을 올려들었고, 프립도 관객들을 사진에 담았다.


보통 공연을 가서도 스스로 막 끌려서 기념품을 사는 경우는 잘 없는데, 이 날은 어떻게든 뭔가를 더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에 줄을 섰다. 공연 컨셉인 Radical Action 이미지와 데뷔앨범 이미지로 된 티셔츠들은 이미 XXL와 S 사이즈 빼고는 동이 나 있었고, 결국 디자인이 아주 마음에 들진 않지만 뒷면에 투어 리스트가 인쇄된 것과 2017년 시카고 라이브 CD를 사는 것으로.


돌아와서 YouTube와 라이브 CD를 번갈아 듣고 있지만, 공연에서의 그 폭발력은 다시 느낄 수가 없다. 로저 워터스와 데이빗 길모어가 함께 하는 핑크 플로이드 공연이 아닌 바에야 아마도 당분간 내 버킷리스트에는 킹크림슨의 다음 투어들이 상위권을 차지할 듯.


(이건 그나마 현재 라인업으로 하는 맛을 느낄 수 있는 동영상)

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근황

1년 반 가량 있던 곳에서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갈 날이 대략 한 달 남았고,
지긋지긋하다 매번 치를 떨지만 또 다시 지루한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1주일 머무를 예정이고,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들, 마음 바쁜 일들, 겉도는 연말 분위기, 추위 등등으로 조금 우울한 중이고,
별 생각 없이 집어들었던 한강의 《검은 사슴》을 읽고 그 한없이 우울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또 다른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고,
《트론》이 리메이크 되어 개봉했다는데 저걸 챙겨봐야 하나 그냥 생까야 하나 고민 중이고,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꾸역꾸역 써내야 하는 글이 하나 있어 편두통이 생길 지경이고,

아무튼 그다지 좋은 정신 상태는 아님.

2010년 10월 4일 월요일

로저 워터스《The Wall》 30주년 기념 월드투어 후기


2010. 10. 3. 8:00 pm
TD Garden, Boston, MA

그야 말로 기대를 한참 뛰어넘은 공연이었다. 《The Wall》 앨범의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 그것도 더 이상 핑크 플로이드가 아닌 로저 워터스의 단독 공연이라는 점에서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을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말로만 듣던 핑크 플로이드 식의 스펙터클을 재연만 해준다면 감사할 따름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예상 외로 아주 입이 딱 벌어져서 나올 수 있었다. 그건 단지 스펙터클 때문이 아니라 공연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현재적 의미 때문이었다. 애초에 《The Wall》 앨범 자체가 단순히 교육에 대한 비판 만이 아닌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 전쟁경제와 재생산의 문제에 대한 비판을 두루 아우르는 수작이었지만, 그래도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것을 다시 공연한다는 것은 자칫 또 하나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마도 로저 워터스도 그 부분을 고민했을 것 같고, 그 결과는 아주 시사적이다.

불꽃이 일고 전투기가 공습사이렌과 함께 무대로 돌진하고 헬리콥터가 관객들에게 핀라이트를 겨누는 개막의 스펙터클이 지나고 대형 애드벌룬으로 된 교사의 형상과 그에 대항하는 어린 학생들의 합창 등등이 나오는 초반까지는 《The Wall》의 뮤직비디오나 영화를 본 이들에게 익숙한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그 와중에 무대 앞과 뒤를 가로지르며 계속해서 벽이 쌓아올려지고 어느새 벽은 스크린의 역할을 겸하며 다양한 비디오 아트를 투영해낸다. 아마 그 즈음부터였던 것 같은데 오바마의 얼굴과 CNN의 로고, 정유회사 쉘(Shell)의 CI 등이 빠르게 화면에 스쳐간다. 그와 함께 나타나는 이라크 공습의 이미지, 관타나모 수용소의 학대 사진의 이미지는 이 공연이 "현재"를 겨냥하고 있음을 강하게 역설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벽이 어느덧 무대를 완전히 가로막을 무렵, 변형가능한 한쪽 벽면을 활용한 세트 무대에는 그야말로 아주 전형적인 미국인 혹은 영국인의 일상이 묘사된다. 소파에 앉아 테이블에 발을 걸치고 TV를 보는 그(로저 워터스)의 일상 옆으로 남은 벽면의 거대한 스크린은 중동 어딘가의 마을에 떨어지는 폭탄의 파열을 담아낸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하얀색 이어폰을 낀 색색의 소들이 현란하게 워킹을 하고 하얀 로고타입으로 "iTeach" "iFollow" "iResist" 등의 단어가 떠다니는 아이팟 패러디가 나타나는가 하면, 네오 나치를 연상케 하는 제복과 깃발의 장면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의 동참을 호소하는 지도자(로저 워터스)가 확성기로 선동에 나선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영상은 WikiLeak가 폭로해 파문이 일었던, 비무장 이라크 민간인들을 향한 미군들의 총격 살인장면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Bring the Boys Back Home"의 영상 퍼포먼스에서였다. 이 순간을 로저 워터스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야말로 미국인들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찰나였다. "발사된 총과 로켓은 헐벗은 이들, 굶주리고 버림 받은 이들에게 향하는 도둑질이다"라는 메시지가 나타나고 곧 이어 어느 군복 입은 미군 병사가 귀환하여 딸과 재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재회 장면은 미국의 주류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감동 코드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들이 마침내 포옹하자 관중들은 열광의 환호성과 박수로 들끌었다. 그건 마치 이 병사의 "애국적인" 복무가 충실하게 수행된 후에 조국의 가족과 재회했음을 모두가 인정해준다는 의미의 환호성, 철군이 아니라 복무기간을 성실히 마친 병사의 귀환에 대한 지지의 환호성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에 이어지는 장면은 다시 "도둑질(the Theft)"을 당한 이교도 아이들의 망연자실한 얼굴들, 그리고 그 위로 뜨는 빨간 색의 커다란 타이포그라피 "Bring the Boys Back Home (그 사내들을 집으로 복귀시켜라 - 철군시켜라)"이었다. 이때 환호하던 관중들은 순간 당황한듯 주춤했고, 이내 다시 이 곡의 마무리에 환호했지만 병사 귀환 장면의 환호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적 애국주의의 일상적 한 단면이 폭로되는 순간, 30년된 명곡에의 환호와 국가에의 환호가 한순간 파열음을 내는 순간이었다.

공연은 벽을 허무는 퍼포먼스와 함께 끝났다. 데이빗 길모어의 목소리로 "Another Brick in the Wall"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로저 워터스의 목소리로 듣는 "Hey You"로 위안이 되는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2010년 9월 22일 수요일

노무현과 노무현이 마주 보는 장면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후속으로 보고 있는 《성균관 스캔들》. 재미 있게 보고 있는데 중간 중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이 드라마에 새겨진 노무현식 자유주의의 이상향이다. 뒤로 갈 수록 강조되는 "탕평책"의 이데올로기도 그렇지만 특히 주요 배역을 통해 인물화되는 이념형으로서의 영웅적 정치인상이 더 그렇다.



여성인 김윤희가 '김윤식'이라는 이름으로 성균관 입학 자격을 받는 이 장면은 그래서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왕이라는 최고 통치 권력에게조차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피력하여 고사장을 일순간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 이선준은 여전히 시퍼런 권력을 등에 업고 있던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지던 젊은 노무현과 닮았다. 그런 당돌한 젊은이들을 보면서 상식을 뒤엎는 인사를 감행하는 정조는 서열을 파괴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하던 대통령 노무현과 닮았다.

노무현과 노무현이 마주보는 이 장면, 이 장면은 달게 만들어진 장면이지만 나에겐 쓰다. 수면 위로 올라왔던 판타지는 5년 동안 허위임이 밝혀졌지만 그 후의 5년간은 다시 그 판타지를 갈구하게 만들고 있다. 그 둘은 함께하여 서로를 완결 짓는 판타지의 한 플롯임이 분명하다.

2010년 9월 8일 수요일

내 말이!

꼴주사들하고 같은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는게 싫어서 침묵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천인공노할 미제"의 입에서도 같은 소리가 나오네 ㅋ
http://news.nate.com/view/20100908n01281

2010년 9월 6일 월요일

The xx



작년에 데뷔한 영국 밴드라는데 인기가 좋군. 살짝 누벨바그 느낌도 나고.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못봐주게 어설프네



프로파간다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매혹적이기는커녕 어설프다 못해 조소를 품게 만든다면 당장 그 제작자를 파면해야 할 것이다.
물량으로 승부하면 된다는 발상은 박통 때 공보부 직원들도 하지 않던 직무유기다.
명박이는 당장 연합뉴스 취재부를 어떻게 좀 해라.
못봐주겠다.

이건..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아트잖아..

저 노동조합 조끼입은 아저씨 좀 봐라. 저 외면하는 눈빛 하며, 항문 불편하게 굳이 두개 의자에 걸쳐 앉은 어색함!
반대편 창문에 비치는 빽빽히 끼어 앉은 사람들과, 감히 장관님(!) 옆에 끼어앉지 못해 넓게 비워둔 저 공간적 대비!
무가지로 얼굴 가린 여성은 한쪽 눈만 살짝 걸친 채 이쪽을 훔쳐보고,
창문에는 브레히트적으로 노출된 두 개의 카메라가!

사진기자 예술할려 그러는데 명박이 뭐하냐, 안잡아가고!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말의 밴드" 추천!

뉴올리언즈에서 발견한 밴드인데 찾아보니 올해 새 앨범을 냈고,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컨트리 음악풍이 섞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살짝 처연한 느낌도 있다. 요즘 즐겨 듣는 중!






그나저나 이번 학기 공연 라인업은 이기팝(Iggy and the Stooges) - 로저 워터스(The Wall 30th anniversary tour) - 벨 앤 세바스찬 -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and the 4th Dimension)!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전쟁경제의 신흥 산업 - 탈애굽기

몇 년 전 아프간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다가 납치된 사람들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전쟁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때 나의 논지는 "분쟁 지역에서의 민간인 구호와 의료봉사 활동은 새로운 전쟁의 중요한 시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놓을 수 없는 인도적 가치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더해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은 "분쟁 지역에서의 민간 외국인 납치는 협상 자금이 오가는 단기적 시장으로서 뿐 아니라 지속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파생상품 시장을 창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신흥 산업이란 무엇이냐. 바로 이교도로부터의 탈출기, 21세기판 탈애굽기다. 식민주의의 유구한 전통은 이미 12~13세기 때부터 이교도의 땅을 누비는 견문록과 여행서들로 출판시장에서 짭짤한 수익을 창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에서 클릭질만 몇 번 하면 아마존 오지 탐험도 좌르륵 코스가 나오는 마당에 그저 평범한 견문록으로 시장에서 주목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전쟁의 시대는 이처럼 답보상태에 놓인 출판 시장에도 블루오션을 제시한다.

주체신을 믿는 김씨 왕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알라신을 믿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이나 "건전한" 미합중국의 시민들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대상"이지만, 공포는 다른 한편으로 아주 잘 팔리는 상품이기도 하다. 언론인의 본분은 "다른 것 필요 없고 그저 주목받기"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로라 링과 유나 리 씨는 작년 김씨 왕조의 소굴로 직접 잠입하는 글로벌 스펙터클로 클린턴 남편까지 캐스팅에 성공하는 큰 흥행을 거두었는데, 어느덧 우리는 그 두 "기자"분들의 수기를 아마존닷컴에서 주문할 수 있다. 단독 주연이 아닌 더블캐스팅으로 대박 친 것이 못내 아까웠는지 두 사람은 책을 따로 냄으로써 소득을 쪼개는 불쾌함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Somewhere Inside: One Sister's Captivity in North Korea and the Other's Fight to Bring Her Home』, 『The World Is Bigger Now: An American Journalist's Release from Captivity in North Korea . . . A Remarkable Story of Faith, Family, and Forgiveness』). 애초에 김씨왕조의 "미개한" 이교도들도 감히 미합중국의 기자님들을 해할 수는 없었을 터, 저 현명한 두 아시안 아메리칸은 블루오션을 선점하여 올라앉을 돈방석을 찾았다.

이에 질세냐. 하나님의 나라 미합중국을 본보기로 열심히 토착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삽의 민족"에게도 기회는 있다. 다만 이곳은 "유교 자본주의"라 자처하는 "사우스 코리아"이니 로라나 유나처럼 닥치고 알라딘닷컴에 올리지 못하는 불편함은 있다. 유교 역시 이교도의 신앙이니 두고두고 멸시해주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 기독교 주식회사의 사업가들은 유교가 만들어놓은 "체면"과 "명분"의 질서를 산업적 기반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필요한 것은 대놓고 상품을 진열대에 올려놓는 일이 아니라, 돈 낼 사람들과 돈 거둘 사람들을 조직하고 "유교적" 질서 속으로 밀어넣는 일이다. 비매품인 아프간 탈출기가 돈 벌어주는 상품이 될 수 있는 바탕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은평을 선거

사회당 금민 은평을 후보가 진보신당 서울시당의 공식 지지를 받았다. 아마도 이것은 이번 재보궐 선거로 그치지 않고, 향후의 통합 진보정당 논의에 상당히 큰 바탕이 될 것이다. 진보신당은 이번 결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오른쪽에 있는 민노당 뿐 아니라 왼쪽에도 정당이 하나 더 있다고 최초로 인정한 셈이다. 여기까지 오는데는 김수행, 김세균, 손호철 같은 좌파 교수들과 이갑용 등 진보신당 밖 좌파들의 압박이 컸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변수로는 심상정의 사퇴를 중심으로 한 당내 우파의 커밍아웃과 그에 대한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노무현의 자살을 통한 자유주의 우파의 결집과 그들이 '진보'라는 레토릭을 선점하며 만들어낸 반MB전선의 단기적 승리가 있을테고. 정치적 변동이란 것이 얼마간의 필연과 또 얼마간의 우연(이를테면 노무현을 등에 업은 자유주의 우파의 기사회생 같은)이 만들어내는 균형점에서 이루어진다고 요즘은 생각하지만, 아마도 사회당 사람들은 지금쯤 자신들이 만들어낸 결과를 "역사적 필연"으로 설명하고 한껏 고취되어 있을 것이다. 우희종, 우석훈, 최영미 등의 지지유세나 아르바이트생 88인 지지 선언 등 선거운동도 나름 아기자기하게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사진으로 보이는 선거운동원들은 정말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조직노선이 싫어서, 아니 그 조직문화와 필연적(!)으로 맞닿아있는 정치 노선에 회의를 느끼고 결별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들의 기쁨에 함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마 그들로서는 20년 넘게 취해온 노선이 사상 처음으로 현실화된 순간일 것이다.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미국에서 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의 편치 않은 관계의 대부분은 아시아계 탓이다. 직장에서 중간관리자가 더 악랄하고, 지주보다 마름이 더 지독하듯이, 명예백인이 되고 싶은 황인종들이 흑인들 대하는 꼴을 보면 참 가당찮다. 그래봤자 현실은 황인종 대부분이 '자영업'자로, 그러니까 자기 돈 끌고 와 퍼다 넣어서 겨우겨우 시민 행세하며 살아가는 데 반해, 흑인들은 엄연히 임노동 위계질서의 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관공서에서 민원을 상대하는 일이나 건물 출입관리, 대중교통 운전이나 레스토랑의 매니지먼트 등 단순사무직부터 기능직까지의 영역에서 흑인들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보다 저임금의 서비스 노동의 대부분은 히스패닉이 맡아 하는 구조랄까. 아시아계는 소수의 전문직과 대다수의 자영업, 그나마도 같은 아시아계를 상대하는 자영업이 대부분.

뭐 그건 그렇고. 난 어차피 아시아계 미국인도 아닌 외국인인지라 살짝 관망하는 포지션에 서있는데, 간혹 당혹스러운 일이 생기곤 한다. 관공서의 경비직이나 출입관리직도 대부분 흑인이 맡고 있고, 내가 들락거리는 곳도 거의 90%가 흑인인데, 간혹 이들이 출입자들을 알아서 구분지어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상하곤 한다. 예를 들어 평상시에는 출입카드를 잘 확인 안하는 정문에서 다른 백인 출입자는 그냥 들여보내고 나에게는 카드를 꺼내게 한다든지 하는 일들.. 혹은 대충 몇 주 연속 얼굴을 보다 보면 어느 선에서 생략되는 몇 가지 확인 절차들(특히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절차상의 절차들)이 꼭 내 앞에서는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들이 아시아계인 나를 더 감시의 대상으로 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웃긴건, 그런 상황에 뾰쪽하게 대응하는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이다. 지난 겨울에 한번, 어제 한번 두번에 걸쳐 거의 똑같은 반응에 황망한 웃음을 짓게 되었는데, 뭔고 하니.. 그 불편한 확인 절차에 날선 말투로 받아치는 내게 매우 순진한 표정으로 "어, 너 이 DVD레코더 어디서 샀니? 이거 컴퓨터 없이도 되는거야? 그거 산 곳 어딘지 알려줄 수 있어?" 이러고 묻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등록된 일련번호와 허용된 물품을 깐깐하게 확인하던 녀석이 이렇게 순진하게 내 물건에 호기심을 나타내면, 까칠한 반응을 준비하며 굳어있던 표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민망해지면서 허탈하게 웃게 된달까.

어쩌면 그게 그들의 처세술일 수도 있고, 처세술일 정도로 교활해 보이진 않으니 정말 순진한 사람들인 것도 같고. 非백인들에 대한 엄격함은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적응해버린 삶의 방편일지도 모르겠고.

2010년 7월 1일 목요일

창법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 2

신중현 옹께서 은퇴공연 이후에 오랜만에 무대에 서신단다([공연정보]). 이번에도 못가보는 것이 무척 아쉽다만, 공연 소개 문구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찾게 되어 옛날에 쓴 글을 생각나게 하는구나.

락의 저항정신
1970년대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갖은 탄압속에서도 ‘락’의
저항정신을 고수했던 그.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가 발표한 ‘아름다운 강산’은 ‘4대강 사업’과 맞물려 환경보전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에 특히 가슴에 와닿는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나뭇잎 푸르게/강물도
푸르게/아름다운 이 곳에 네가 있고 내가 있네”
이번 무대에서는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이 곡을 부릅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는 올곧은 창법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아래는 예전 블로그에서 가장 방문수가 높았던 문제의 글 ㅋ


창법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

신중현과 박정희 정권 사이의 유명한 일화로, 그의 대표작인 [아름다운 강산]의 탄생 비화가 있다. 당시 여러 가수들을 통해 히트곡을 만들어냈던 신중현에게 집권당이던 공화당에서 전화를 걸어와 박통 찬가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신중현은 잠시 고민하고는 거절했고, 조금 뒤에 청와대에서 비슷한 전화가 걸려왔으나 역시 거절했다고 한다. 신중현을 비롯한 록뮤지션들을 대거 철창 속에 가두었던 대마초 파동은 이미 그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데, 어찌 되었든 권력의 주문을 연거푸 거절한 입장에서 신중현은 이 곡을 만들었다.


작사 신중현
작곡 신중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나뭇잎 푸르게 /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 달려보자 저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 말해보자 새희망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우리는 이땅위에 /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찬란하게 빛나는 / 붉은태양이 비추고
하얀물결 넘치는 / 저바다와 함께 있네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사랑하는 그대와 / 노래하리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먼훗날에 / 너와나 살고지고
영원한 이곳에 / 우리의 새꿈을
만들어 / 보고파

봄여름이 지나면 / 가을겨울이 온다네
아름다운 강산

너의 마음은 나의 마음 /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
너와 나는 한마음 / 너와나

우리 영원히 영원히 / 사랑 영원히 영원히
우리 모두다 모두다 / 끝없이 다정해

가사로만 보면 너무도 노골적인 국가 예찬이지만, 그 속에는 직설어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어와 역설이 숨겨져 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김정미가 부른 버전이다. 중앙정보부로부터 '퇴폐적인 창법'으로 지목받았던 그녀는 이 곡에서도 퇴폐미를 마음껏 발산한다. 가령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부분에서 콧소리가 섞여 울리는 부분에 이르면 가사의 내용과 창법이 묘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여가수의 색기 어린 창법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을 얼마나 곤혹스럽게 했을지 짐작해보라.

김정미 버전의 반어법을 증명해주는 것은 그 정반대편에 있는 이선희 버전이다. 맑은 목소리와 내지르는 창법의 이선희는 직설적인 가사를 직설적인 창법으로 배가시킨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이 강산이 아름답고 '선진조국의 드높은 기상'이 한껏 와닿는 느낌이다. 반어법을 무력화시키는 이 모범생 가수의 단정함!
그녀의 단정함은 산울림의 단정함이 의도했던 은근한 조롱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야말로 순도 100%의 단정함. 이것은 이후 그녀의 정치적 선택과도 연속선상에 있다. '퇴폐적'인 의도로 탄생된 이 곡이 어느새 이선희라는 '국민가수'의 대표곡으로 탈바꿈한 데에는, 그런 단정함을 사랑했던 권력과 언론의 부추김 또한 있었음을 쉽게 추리해 낼 수 있다.

두 가수, 두 창법이 빚어내는 이 차이가 내가 김정미를 듣고 또 듣는 이유다.


2010년 6월 7일 월요일

서사가 빈곤해지면 이국을 착취하라: 《섹스 앤 더 시티 2》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섹스 앤 더 시티 2》는 《Sex & the Desert》다. 뉴욕이 나오긴 하지만 이 영화는 뉴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런던의 올드미스 브리짓이 결혼하고 할 말 없어지자 태국으로 날아갔듯이, 뉴욕의 前올드미스 캐리는 두바이로 날아간다. 결혼의 중압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달아난 세 여자의 얘기는 pc하지만 힘이 없고, 홀로 꼿꼿이 싱글 섹스 라이프를 즐기는 사만다는 과장되다 못해 괴물로 묘사되고 있다. 맨하탄의 복잡한 일상과 의무들 속에서 절제 없이 소비하는 그녀들이 갖던 일말의 도발성은 이국의 낯선 존재들 앞에서의 과시적 소비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녀들의 '속깊은 게이친구'들이 결혼하며 시작하는 도입부가 주는 착취의 불쾌감 역시 이국을 착취하는 중반부의 불쾌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막판에서 캐리든 누구든 돌씽으로 만들며 끝냈다면 조금이나마 만회가 되었겠지만 후반에서마저 갈등 수습과 봉합에 급급한 이 영화는 너무 멀리 갔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진보신당

아래 글은 심상정이 사퇴 발표하기 하루 전날, 그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서 올렸다가 황급히 지운 글이다. 무능한 한명숙이 예상치 못한 선전을 한 것을 보고 결과론적으로 판단하여 노회찬에 대해 원망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의 판세에서 여러모로 동떨어져 있는 소리로 보이겠지만,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다시 이 글을 올린다. 심상정의 사퇴는 대단히 유감이지만 진보정당 내에서의 "정치인"과 평당원의 관계, 당내 민주주의와 표상의 문제에 대한 '자칫 잊을 뻔한' 화두를 되돌려 줬다는 점에서 아픈 소득이다.

그리고, 노빠들은 그 아가리 좀 닥치라. 떠다주는 숟가락도 제 입에 못넣을 정도로 무능한 前 이라크 전범 총리가 번드르한 외모빨과 사기꾼의 풍모를 풍기는 말빨로 무장한 개발주의자에게 발린 것을 두고, 왜 전쟁도 반대하고 개발도 반대하는 사람에게 와서 원망질이냐 원망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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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지지와 담론 정치

진보신당이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두 상징적 정치인을 단체장 선거에 배치한 것을 두고 '소모'라 평가하는 이도 있고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신당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독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악담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진보신당을 넘어서 이른바 '진보정당' 운동이라는 것을 해온 이들에게 무척 의미 있는 연대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있었던 진보 지식인 107명 진보신당 지지선언을 보면 그간 이런 형식의 지지선언에서 보기 힘들었던 이름이 종종 보인다.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말하며 제도권 내의 의회정당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김세균, 들뢰즈 푸코 이후로는 정치운동에서 탈주한 것처럼 보이던 이진경, 소위 '문화운동'의 바운더리를 만들고서 정당운동과는 거리두기를 해왔던 강내희와 문화이론의 멤버들이 그들이다. 그런가 하면 진보신당과의 연대 문제로 분당 위기까지 겪었던 사회당 역시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평을 재선거를 준비중인 금민 전 대표가 24일 진보신당 수도권 후보 지지 선언을 했고, 인천시당도 28일 진보신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것은 "좌파라면 진보신당 밑으로 대동단결" 이런 것이 실현되었다기보다는 정당운동이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이제야 비로소 진보정당 운동의 바른 판세가 그 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민노당의 반MB 연대를 조롱하고 또 누군가는 비웃지만, 내 심정은 그들의 '솔직한' 행보가 너무나 고맙고 또 반갑다. 애초에 진보정당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달랐던 사람들이고, 지금의 행보 역시 그들의 정체성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고 진지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민노당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간 그들과 섞여 있느라 괴상한 모양새로 엎치락 뒤치락 했던 진보정당 운동의 10년 역사가 아깝다면 아까울까.

진보정당은 '혁명'용 정당이 아니다. 혁명은 누군가가 기획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잠정적인 내 견해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혁명적 모멘텀이 형성된다면, 그것이 내셔널리즘이나 인종주의, 반공주의나 패권주의, 정치적 냉소주의나 반지성주의로 오염되어 왜곡되고, 종국에는 혁명이 아닌 반혁명, 변혁이 아닌 근본적 회의로 치닫지 않기 위한 "준비된" 담론지형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정당 운동이 그런 혁명적 상황을 '준비'하는 운동 역시 아닐 것이며, 그보다는 그 "담론의 지형"을 만드는 데 중요한 한 축이 되는 운동이 될 테다. 얼마 안되는 TV토론 출연으로 각광을 받는 심상정, 노회찬의 정책 공약들과, 꽤나 흡인력 있게 잘 설계된 사회당의 '기본소득' 정책은 그런 담론 정치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팻 메스니: 19세기말적 기계미학 혹은 백인-개인적 임프로비제이션의 완성

팻 메스니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예매를 했을 적만 해도 "오케스트리온"이라는 새 앨범+투어의 명칭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팻 옹의 열혈팬임을 인정 받아 이번 투어의 공식 티셔츠 디자인으로까지 채택된 만화가 눈고양이 화백의 그림을 보고서야 그게 1인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가 공연일인 20일에야 드디어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서 놀라움에 감탄 연발을 멈추지 못했다.

사진으로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잘 전달이 안되는데, 저 자동연주 기계들에 둘러싸인 팻 옹은 그야말로 실험실의 과학자의 포스를 풍겼다. 전자 신호로 움직이는 각각의 기계들은 신호를 받을 때마다 빛을 발했고, 저 냥반은 그게 너무나 자랑스러운지 신모델 로봇 전시회에 나온 박사과정마냥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고 설명을 해댔다. ㅋ 같이 간 선배 말마따나 연주실력이 받쳐주지 않고 그저 저런 실험만 했다면 헐렁했을텐데 실력마저 출중하니 여러모로 흡족한 연주(혹은 퍼포먼스?ㅋ)였다.
다만 팻 옹 본인이 저런 구상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해주는데 그제서야 그의 음악세계가 재즈의 시원으로부터 저 멀리 다른 어딘가로부터 유래하여 잠시 재즈를 경유했다가 다시 다른 차원으로 떠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살배기 시절 할아버지의 자동연주 피아노에 꽂혔던 것이 이 모든 사단의 배경이라며 그는 9살의 꿈을 머금게 해주었던 1920년대 뮤지션들의 자동연주 기계 실험에 대해 오마주를 던졌다. 정확히 말하면 18세기의 자동인형과 19세기 말의 기계미학의 산물이었을 저 꿈은 19세기 말에 뉴올리언즈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재즈와는 전혀 다른 미학, 판이하게 다른 인간관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출중한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중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각각의 임프로비제이션이 자유롭게 들어가고 빠져나가는 절묘한 재밍의 팀웍과 공동체적 인간관의 산물인 정통 재즈와, 프로그래밍된 자동기계-악기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통해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극대화하는 팻 옹의 재즈는 이미 다른 장르를 넘어 다른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빌 에반스, 키스 자렛, 얀 갸바렉 등의 백인 재즈를 통해 그 뿌리를 만들었던 이 사색적인 개인 음악은 19세기적 기계미학의 이상과 결합하면서 성공적으로 그 숙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구조조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기계에 밀려 이번 투어에서 제외된 팻메스니 그룹의 다른 세션들을 생각하니 잠시 러다이트 운동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역시 좋긴 좋았다는..

2010년 5월 11일 화요일

무릇 장로님과 그 종들이 명하나니

[연합] 법원, 장애인 유아 살해한 산모 선처

일찍이 '인간' 아닌 것들이 갈 길을 열어주시었던 장로님과 그 뜻을 받드는 어린 양들은 오늘도 바지런히 길을 닦고 또 닦고 있나니, 그 길을 법전에 명문화한 바 "우생학"이라는 이 시대의 정신을 우리는 찬양해 마지 않는다. 거룩하신 장로님의 종임을 스스로 명심한 판관들은 위와 같이 그 길을 넓히고 또 깊게 하여 어리석은 후손들이 따를 판례를 만들고 또 만들어 장로님의 우생 진리의 실용성을 드높이고 있도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무엇이냐? 우리 어린 양들은 장로님의 깊은 의중을 읽어 그 짧은 두 글자 사이에서도 자간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나니 그것이 바로 '실용'의 정신이다. 무릇 장로님 가라사대 인간은 '쓸모'가 있어야 하는 바, 양손 양팔 멀쩡하고 눈코귀 제대로 뚫려 있어 말끼를 못알아 듣는 일이 없어야 하나니, 일찍이 장로님께서 이 땅에 손수 트신 거룩한 물길에 한 줌 희망이 되고저 삽을 들고 땀 흘려 보탬이 될 수 있어야 '인간'이다. 이 물길의 행렬을 가로막는 사탄의 무리들이 그 씨앗을 말리고저 회유와 거짓 유혹을 거듭하지만 장로님의 일침에 회개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도다. 여기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보태어 이르나니 혹여 그 씨앗의 자리에 '인간'으로써 '쓸모'가 없는 하나님의 시험이 들어선다면 장로님을 믿고 그 싹을 자르도록 하여라. 그 죄는 장로님의 뜨거운 눈물로 모두 씻겨 나갔나니, 혹여 그 큰 뜻을 이해치 못한 네 이웃이 너를 지탄커든 우생학의 교리 제14조 1항을 참조하라고 일갈토록 하여라.

그리 하여 장로님과 그 종들이 선언하나니, 저 여인의 죄는 사하였노라.

장로님 인증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베크 옹



아놔, 프리미어에서 화면비 조절은 어떻게 하는 거임? 16:9로 간지 나게 찍었는데ㅋ 더구나 유튭에서 화면을 씹어먹은 것인지 싱크로가 어긋나는 부분도 발생 ㅡㅡ;

2010년 5월 4일 화요일

뉴 올리언즈 방문 후기

1. 도시 전체가 "재즈가 생활이고 밥벌이에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공항 이름도 루이 암스트롱 공항이고, 셔틀버스나 식당, 가게 등등에서 재즈가 흘러나온다. 어제 가본 어떤 박물관에서 들은 설명으로는 '재즈 퓨너럴'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상을 당한 가족들이 밴드를 고용하고 신문에 장례식 광고를 내면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함께 재즈를 들으며 고인을 보내는 행사라고.

2.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상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 생활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담론은 넘쳐나는데,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가는 곳곳마다 "rebirth"나 "rebuild"의 구호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허리케인 시즌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라고 묻는 사보험 광고가 뻔뻔하게 라디오를 타는 것을 보면 재난의 기억은 공공성의 강화보다는 개인적인 불안과 공포를 돈과 맞바꾸는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흑인들이 많다는 것은 느꼈지만 도시 자체가 관광지로서 의미가 크다보니 그들 생활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밖에 접할 수 없었다. 버스마다 에이즈 관련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가난한 흑인 에이즈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간다는 현실이 여전히 진행형인 듯도.

4. Jazz & Heritage 페스티벌 최고 스타였던 Pearl Jam의 공연은 나에겐 악몽이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원격 공연을 시도한 '최초'의 공연이라던가. 사회자가 나와서 그 얘기를 하고 무대 양 옆의 스크린에 사막형 군복을 입은 부대원 열 명 남짓이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는 화면이 나온다. 순간 Pearl Jam을 보러온 수천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USA"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원격 공연 따위의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갔던 나는 그 순간 나치 전당대회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펑크한 차림의 자유로운 스타일의 젊은 관중들이 일제히 국가를 연호하는 그 순간의 아이러니란. 주최측만의 의도일 것이라 애써 위안하며 참아보려 했지만, 무대에 등장한 Pearl Jam 역시 "수고하는 장병들"에게 호의의 인사를 던지고 또 다시 "USA" 러시. 원래 같은 시간대에 다른 무대에서 진행되느라 얘네 공연 40분 정도 보고 중간에 들어가려 했던 Jeff Beck 공연으로 황급히 장소를 옮겼다. 다행히 그곳에선 그런 짓은 안 하더라는. 이번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제 Pearl Jam을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5. 재즈페스티벌의 그런 시도들, "rebuild, reuse, rebirth"라는 구호와 공공성을 경유한 국가적인 제스처들을 보면 이런 로컬 단위의 문화 산업이 Nation을 지탱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것 같다. 한국이 일상에서 Nation에 관한 담론으로 과포화되어 있다가 문화산업으로 가면 마치 그에 초탈한 마냥 '글로벌'한 어딘가로 탈주(?)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편이라면, 미국은 일상에서는 아무도 Nation을 말하지 않는데 오히려 저런 혼종적인 문화 이벤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USA가 압도하는 편이랄까.. 크레올이 어떻고, 시에라 리온의 난민들이 어떻고 하며 온갖 문화적 음악적 다양성으로 뻑쩍찌근하게 돌아가던 판에서의 최고 흥행공연이 저런 프로파간다로 귀결된다는 것이 참 씁쓸하더만. 마침 뉴욕에서 무슨 테러 모의가 있었니 하면서 공항마다 위험 수위가 높다는 표지판이 붙는 여전한 911의 지배 현장.

6. 남부의 보수성은 유명하지만 그래도 피부로 느낄 일들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미국 와서 처음으로 인종 때문에 모멸감을 느껴야 했던 일들이 두어 번 있었다. 아이러니인 것은 그렇게 마주쳤던 남부의 백인들 역시 "텍사스 레드넥" 따위의 호칭으로 멸시 받는, 교육 수준 낮고 소득 수준도 낮은 하층 계급이 많다는 것. 자신의 소수성에 대한 분노를 자기보다 못한 소수자들에게 해소하는 전형적인 사이클.

7. 유스호스텔은 참 신기한 곳인게, 그냥 혼자 구경하다 올 생각으로 갔던 여행에서 쌩판 처음보는 스물댓 살의 백인 애들 세 명과 친구가 되어 3일 동안 같이 돌아다니게 만들어주었다. 미시건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는 애들인데, 대학원생이 아닌 백인들과 이렇게 가깝게 지내보긴 또 처음이군.

아래는 사진. 재즈페스티벌은 동영상만 찍었는데 어쩔지 생각중.

루이암스트롱 공항 벽면에 부착된 그림. 저것 말고도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그림도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음.


미시시피강.


프렌치쿼터에 있는 건물들이 유명한데 찍고 나서보니 대부분 관광객들을 의식한 인위적인 건물들이 많았음. 이건 좀 다른 느낌.

줄 서서 들어가야 했던 유명한 재즈 클럽 "Preservation Hall"의 전속 밴드 공연.

2010년 4월 30일 금요일

전쟁책동과 사법질서파괴, 그 다음은?

"결연한 복수"를 외치는 정치인들은 후진 기어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 선동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고, 선동으로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이적" 혐의를 씌웠다. 이제 후퇴나 방향 선회는 지지세력을 깎아먹고 반대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UN안보리에 회부를 하든, 자기들 말마따나 "경제에 타격 없는 국지전"을 벌이든 "복수"는 이제 그들의 정치적 생명이 되었다. 설령 그 복수의 상대가 실제 사건의 주모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이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라도 그 사실은 감추고 또 폐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답은 하나 밖에 없다. 복수! 복수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복수!

"정치의 자유"를 외치는 정치인들에게도 후진 기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 정보의 무단 공개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추궁과 법적 강제에 따른 "파산 공포"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소신"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설령 위헌 행위임이 판명 나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더라도 지지세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끝까지 투쟁하다 산화하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다. 이제 적은 법치질서 그 자체에 있다. 법을 쳐서 치의 무한한 자유를 얻겠다는 그들의 고귀한 소신 앞에 남은 정답 역시 하나다. 파괴! 파괴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도 파괴!

문제는 그들의 복수와 파괴가 지난 세기와는 달리 어떤 "결연한 질서"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부흥을 통한 공공의 발전이라는 신화는 땅바닥에 던져진지 오래이고, "애국"이 그저 어떤 공고한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한 이해타산에서 나온 구호임은 이제 어지간한 필부도 아는 세상이다. 복수와 파괴의 구호 아래 모인 지지자들도 숭고한 무엇인가를 지키고자 내 한몸 희생하려는 진지하고 융통성 없는 꼰대들이 아니라, 그 구호를 통해 내 잇속 침범하는 자들을 속아내자는 잔머리 따라 움직이는 뜨내기들일 뿐이다. 책임질 이 없는 구호는 공허하게 떠올랐지만, 후진기어도 브레이크도 없이 한껏 팽창할 뿐이고, 이제 이것이 어떻게 터질 것인지 우울하게 지켜볼 일이다.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종강

페이퍼 하나 남겨 두고 오늘 드디어 종강했다. 극장에서 영화본 것은 《아바타》가 마지막이었던 듯. 몰아서 《인생은 아름다워》 두 회분을 보고 몇 사람과 통화를 했다. 한국 시각으로 어제 이형표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지금도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다. "멋스럽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노신사였고, 또 여기서 말동무를 해드리고 있는...이라기보다는 거의 일방적인 말 세례를 받아드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돌아가면 꼭 찾아뵙고 멀리 떨어져 만나기 힘든 두 노인의 다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품어왔던 분인데... 참 기분이 그렇다. 요즘 추세로 따져도 오래 사신 편이고 또 긴 지병 같은 것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애써 슬픔을 덜어보려하는 것도 같다만, 내가 그 연세가 된다고 해도 사실 "오래 살아서 미련 없는 생" 따위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일 것임을 알기 때문에 계속 먹먹한 상태다. 못 들은 이야기, 1차 자료 없는 그 자체로 유일한 사료라 할, 기록 못한 얘기들도 많은데 한 '역사'가 그냥 통째로 사라져버린 느낌도 들고... 오랜 친구가 긴 고통 없이 떠났다는 소식에 애써 위안을 찾으려 드는, 이곳에 남은 비슷한 나이의 노인도 눈에 밟힌다. 다음 주는 바쁘지만 그래도 또 찾아 뵈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