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8일 목요일

진지희라는 배우

표현력의 수준이 그저 '악동 캐릭터'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대본이나 감독의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 수준도 넘어섰다. 하이킥의 어제 에피에서 확연하게 느꼈다.


저 장면에서 이 배우의 웃는 얼굴, 그리고 지칠줄 모르고 "끝까지" 가고야 마는 천진한 악랄함의 표현이 떠오르게 한 것은 지상의 배우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껏 배우 사람의 '연기'로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어떤 판타스틱한 세계의 피조물들이었다. 가령 준지 상이 만들었던 이 캐릭터..

끝까지 가면서도 멈춤이 없고 반성의 껀덕지도 없다는 점에서 이 캐릭터의 한 면모가 떠올랐다면, 또 다른 측면에서 떠오른 것은 좀 더 고전적인 아래의 캐릭터다.
뭔가 다 알고 있지만 능글 맞게 그걸 즐기는 우월한 존재!

2010년 2월 15일 월요일

교수회의 총기난사 사건

사실 생각해보면 총기소지가 허용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공포'는 이곳에 오기 전이 더 컸던 것 같다. 정작 여기서는 일상에 도처한 위험물로서의 '총'에 대한 곤두선 신경이 더 무뎌졌다고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놈의 나라는 입국하는 비행기 출발 전부터 액체반입이 안된다느니 커터칼도 못가지고 들어간다느니 하고, 입국수속 때는 알몸투시기까지 도입한다느니(다행히 나는 그 전에 입국했다만) 하면서 온갖 감시와 단속을 하면서도, 일단 들어와서 보면 그딴 것 다 딴 세계 얘기다. 지금도 도서관 한켠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 건물 안에 어느 누가 가슴팍에 총을 들고 있을지 알 수 없고, 그런 것에 대한 예방적 단속도 없다. 하긴 그런 예방적 단속이 일상 곳곳에 있다면 그야말로 판옵티콘이겠지. 지금 미국사회는 총기상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과, 그들의 입김을 막을 힘도 막을 의지도 없지만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만큼은 못견디는 리버럴들이 만들어놓은 묘한 균형 속에 있는 것이다. 총을 지닐 자유와, 총을 지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 자유.
그런 '자유'가 만들어놓은 기묘한 마취 속에 살아왔는지, 나 역시 '공포'의 대상이던 총에 대한 관심을 잃은지 꽤 되었다.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딴 생물학계에 꽤 알려진 조교수가 종신자격을 얻지 못해 교수회의에서 총기를 난사했다"는 대학원 사회에서 꽤 낯익은 직책과 상황이 '사건'의 정황으로 알려지고서야 다시 내 바로 옆에 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작년에 입국하고 초반에는 유학생들로부터 들었던 몇몇 사건들(단지 "거기 있었다"는 이유로 학교 앞 거리에서 총에 맞아 즉사한 아시아계 여학생의 이야기 같은) 때문에 한 동안은 밤에 나돌아다니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일상 속에서 재수없으면 마주칠 '교통사고' 같은 확률의 문제로 치부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상태가 총기상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정신상태인 것도 같다.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2월 9일, 두 가지 회상

1.
학부 때 우리 과 NL들의 필독서, 아니 필수 입문서가 있었다. 아마 우리 과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교재였을 텐데, 당시 나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 책의 저자를 매우 싫어했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후배들 앞에서 비판을 해댔으니 꽤나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하겠다. 뭐 지금에 와서도 그 사람의 학문적 스펙트럼과 논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마찬가지긴 하지만 소급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지. ㅋ 아무튼 어쩌다보니 그 문제의 학자가 초청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돌아가면서 인사하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만. 초청자가 초청자다보니만큼 식사 중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한 이야기로 초점이 모아졌다. 북한에 정통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독일 외교부 주재원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2년 전에 자기가 평양에 갔을 때 겪었던 에피소드를 끝도 없이 쏟아냈다. 나의 기억 때문에 묘한 기분으로 시작했던 식사는 그 끝없는 대화를 통해 또 다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끝났다. 나름 미국 수정주의 역사학의 대가가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도 북한은 기이한 무용담을 불러일으키는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곳으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었다. 하긴 수정주의 역사학이라는 것도 결국 현실주의 정치꾼들과 정치학 장사꾼들하고 대립각을 세울 때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일 뿐, 기본적인 로직이나 전제에 있어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거울쌍이 아닌가. '구국의 횃불'들이 이 장면을 봤어야 하는데.

2.
중고딩 때 나의 취미(?)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던 조그만 음반 가게의 카세트 테입 선반을 뒤지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음반 산업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 성시완 같은 사람들의 비평을 읽으면 한국은 정말 아트락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곳임에 분명한데도, 간혹가다가 전혀 의외의 앨범들이 라이센스 테입으로 음반가게 구석에 박혀 있곤했다는 점이다. 《접속》으로 뜨기 전의 Velvet Underground & Nico 바나나 앨범이나 Gentle Giant, Klaatu, 심지어 Triumvirat의 앨범도 먼지가 잔뜩 묻은 채로 동네 음반가게 카세트 테입 선반에서 내가 찾았던 것들이다. 그때 아트락의 입문반으로 정말 테입 늘어지게 들었던 것이 Yes의 《Fragile》이다. Yes는 Pink Floyd보다 좀 낡은 느낌, 그래도 Camel 보다는 뭔가 세련된 느낌, 뭐 그런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버스 타고 지나는 길목에서 봐둔 음반 가게에서 '발굴'해야 했던 먼지 속의 그 앨범들은 내게 '현재형'의 의미는 아니었다. 나는 주변 아이들이 모르는 옛날의 가치 있는 음악들을 스스로 찾아내서 향유하는 콜렉터 쯤으로 자기만족을 했던 것 같고, 그건 분명 스노비즘이었다. 슬래시 메탈 마스터 했으니 이제 프로그레시브를 정복해볼까, 모던 재즈를 섭렵했으니 이제 한 단계 높은 프리 재즈다, 뭐 이딴 식의 사고를 했던 것이다. 그게 재수없고 말고를 떠나서 근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난 대략 군 제대를 전후해서 음악에 관한 한 그런 새로운 영역을 정복하려는 노력을 아예 접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내 음악적 취향의 바운더리는 결국 그 중고딩 때의 스노비즘이 만든 것 딱 그만큼이다.
별 영양가 없는 얘기를 줄줄 늘어놓은 것은 S군의 분통 터뜨리는 불만이 무서워서인데, 그래도 뭐 Greenday에 Muse까지 직접 봤다니 더 이상 염장이라고는 느끼지 말아주기 바란다. 그래, 나 오늘 잔혹한 일정상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결국 Yes 콘서트를 다녀왔다. 도저히 내 유년을 지배했던 저 신화적인 밴드를 직접 안보고는 못배기겠더라. 벌써 보컬 존 앤더슨 할아버지는 병환으로 은퇴까지 했는데 언제 영영 은퇴하실지 모르는 노인네들 아닌가. 이건 하늘이 점지한 운명적 만남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봤다.
위의 저 식사를 끝마치니 대략 8시 반. 공연은 8시부터 시작. 택시 타고 달려서 가니 그래도 오프닝 밴드가 있었던 것인지 이제 막 시작한 티가 나더라. 새로 바뀐 보컬에 대한 걱정이 좀 있었는데, 귀를 의심케 했다. 66년생이라는 이 '젊은' 보컬은 거의 모창이라 해야할 정도로 오리지널을 잘 카피하고 있었다. 음.. "그럼 프레디 머큐리도 모창으로 대체하고 Queen 재결성을 하면 안되나?" 따위의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가 스스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 어떤 밴드보다 보컬의 음색이 아주 독특한 밴드인데 어디서 잘도 이런 클론을 찾아냈구나. 히트곡도 많으신 이 분들, 관객석의 40~50대 어르신들이 다들 따라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스티브 하우의 쌍기타 신공! 마치 주윤발의 쌍권총 신공을 직접 본 것 같달까 ㅋㅋ 〈Roundabout〉 10분 버전도 좋았다. 이 옹들의 젊은 시절은 본 적도 없지만 살아남아서 이런 신공들을 펼쳐보여주시니 감읍할 따름이다. 다시 한번 산울림이 안타깝다는 생각 잠깐.


Steve Howe 노인의 쌍기타 신공

덧. 대학 시절의 뻘짓 에피소드 하나 더. 새내기 때 학생회 선배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던 친구놈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도 락을 엄청 좋아했다. 한번은 그 녀석이 "○○아, 그래도 얼터너티브는 기존 락에 대해 저항적인 음악인데 아트락은 좀 아니지 않냐? 보수적인 것 같은데"라고 물었고, 내 대답은 "아냐 임마, 아트락을 다른 말로 프로그레시브락이라고 하잖아. 몰라서 그렇지 이게 얼마나 진보적인데"였다. 우문에 우답이다. 아 얼굴 화끈거려.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나는 네가 도서관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그래 잤다. ㅡㅡ;
한참 자고 눈을 떴더니 누군가 이런 스케치를 놓고 사라졌더라.
저런 정교한 스케치를 하다니 그 사람도 진득히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닌 듯.

덧. 그러고보니 오늘로 이제 돌아갈 날이 딱 1년 남았군.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지금 돌아가는 꼬락서니

독□영화전□관과 영□미디□센터가 수구들의 손에 접수되었음을 규탄하는 트윗과 한명숙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규탄하는 유시민의 트윗 포워딩을 동일인에게 1시간 간격으로 받았다. 그 사람은 두 '탄압'의 발원지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 현상적으로야 그렇지.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의 세계관에서는 본질적으로도 그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독□영화'라는 것도 유시민이 말하는 수준의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내에서 정부 지원도 받고 자본의 투자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나야 하는 '시민'적인 가치의 총체라는 그런 세계관. 그래서 결국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것은 도로 '그 민주주의'인 것이고. 그걸 넘어서는 민주주의는? 안타깝지만 '고진감래' 등급을 받고 '전□관'에도 걸기 어려운 냉혹한 시장 논리 앞에 제물로 던져져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저 사람 말고도 독□영화판의 다수라면, 나는 명박이와 그 따라지들의 지금 행동을 비판할 생각이 없다. 유시민류의 '그 민주주의'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던 기형식물 같은 '독□영화'라는 이름의 뮤턴트는 어쩌면 정초신의 영화보다 더 해악이 큰 것이었을 테다. 당장 '독□영화인'인 저 트위터가 유시민과 한명숙을 위해 발로 뛰는 것을 보라. 그런 면에서 명박이는 단기적 지향으로는 지능적이지만 장기적 지향으로는 유시민보다 멍청하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선덕여왕》에서 《추노》로

선덕의 템포에서 벗어나와 진입하기엔 살짝 적응 안되는 부분이 있었으나 무사히 착륙. 《환상의 커플》과 《내조의 여왕》의 찌질남에서 비극적인 영웅으로 거듭난 오지호의 무게감은 나쁘지 않은데, 그 옆에서 대본 읽는 이다해의 소격효과에 손발이 오글오글. 이요원이 진흙탕에 구르고 똥물에 세수했던 것은 상당 부분 고미실에게 밀려 여왕 이름값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손 치더라도, 웃통 벗은 훈남들 속의 히로인이면 적어도 그 반만큼은 몸을 던져야 하는데 이건 뭐 연기도 못하고 망가지지도 못하니 시트콤이 따로 없다. 선덕에서도 오글남 김유신이 한 역할 했다만, 적어도 그 오글거림은 배역에 대한 충실함에서 나온 것이니 배우 탓은 아니지.
그건 그렇고 《추노》가 하층계급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이라는 해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전히 이 드라마를 끌어가는 중심서사는 왕조와 그 속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있으니. 아직 《다모》를 넘지는 못했다. 공형진이 어떻게 되나 봐야겠지.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Mount Vernon, 인종주의 국가의 원풍경

어제 어떤 선생님의 부탁으로 찍사 노릇을 하기 위해 조지 워싱턴이 죽을 때까지 살던 집인 Mount Vernon과 케네디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 1일 여행을 다녀왔다. 마틴 루터 킹 데이라 해서 휴일이라 마침 요즘 출근하는 곳이 쉬는 날이기도 했고. 가기 전에는 조지 워싱턴 집이든 뭐든 별 생각이 없었다. 자기들 초대 대통령 기리는게 얘네들한테야 한국에서 단군 기리는 거랑 비슷한 일일거란 정도의 생각이 있었을 뿐.

그런데 그런 준비 안된 내게 정통으로 한방 먹이는 계기가 있었으니.. "We fight to be free"라는 영화였다. 마운트 버넌은 구조상 Ford사가 만든 오리엔테이션관을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는데, 워싱턴 생가 미니어처라든가 각종 그림, 도표 등을 지나면 약 200석 규모의 극장이 나온다. 포드가 돈을 대서 그런지 극장이 때깔부터 달랐는데, 안내하는 백인 아주머니가 아주 자랑스럽게 이 fabulous한 영화를 절대 놓치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그래 뭐 시간도 넉넉하겠다, 전공도 전공이겠다 한번 보고 가자 생각하고 자리를 잡았다. 단체 관람 온 것으로 보이는 애들이 가득 자리를 채우고 있어서인지 살짝 어수선하다고 둘러보는 와중에 영화가 시작한다. 오우 포드가 돈을 대서 그런지 교육영화 주제에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전투병 의상 하며 상류층 여성들의 화려한 코스튬 하며. 워싱턴과 훗날 영부인이 될 마사가 처음 만나는 장면도 무슨 상층 가문의 파티 같은 곳인 듯 했다. "인디안 죽여본 적 있어요?" 뭐라? 마사 집안의 어린애 하나가 워싱턴에게 당돌하게 질문을 하네. 워싱턴 머뭇거리고 마사가 애한테 뭐라고 한다. 아하 나름 그 당시 분위기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인가보다 생각했다.

사실 전쟁 얘기가 드문드문 나올 때도 뭐 뻔한 영국영화식 전쟁 묘사가 나올거라 안이하게 생각했다. Revolutionary War라니 당연히 영국군과의 전투가 나올거라 생각했고. 그런데 갑자기 매복해 있던 우르크하이와 오크족이 등장한다. 그 흔한 깃털 모자도 안썼다. 코와 귀에 온갖 피어싱을 한 독기서린 눈을 가진 그들. 아놔, 진짜 인디언과 전투가 나올줄이야. 이건 반세기 전에 수정된 진부한 코드 아니더냐. ㅡㅡ; 감히 사령관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짐승 같은 것들의 공격에 우리 워싱턴 장군의 눈이 이글거린다. 세상에, 그 '짐승'들과의 전투가 이 영화가 묘사하는 레볼루셔너리한 전쟁의 전부다. "이 땅은 우리 땅이니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며 식민군대에 대항할 것을 선동하면서 정작 살육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 땅 숲속에 숨어 사는 우르크하이들이다. 하긴 같은 백인들끼리 싸우며 피 흘리는 모습보다야, 음침한 인상에 괴상한 장식을 한 숲속의 우르크하이들과 싸우는게 더 스펙터클하겠지.

영화가 놀라운 것이 아니라, 2010년 정초에 그런 영화를 자랑스럽게 교육용이랍시고 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불이 켜지고 문득 단체 관람온 애들을 다시 둘러보니 알 만하다. 스물에서 서른 남짓 되는 애들 중에 흑인 하나, 아시아계 하나, 나머지는 모두 백인들이다. 어디 급이 좀 높은 사립 고등학교에서 왔나보지. 마틴 루터 킹의 날에 저런 영화를 보는 그 흑인 아이는 뭘 생각하고 있을까? 마운트 버넌 투어 코스 막바지에 워싱턴 묘비가 있고, 그 옆으로 워싱턴 가문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들을 기리는 비석으로 가는 길이 있다. 초딩들을 인솔한 교사가 워싱턴을 기리는 의식을 진행한다. 옆길로는 가지 않는다. 그게 코스의 마지막이다.

《아바타》로 수정주의 사관을 백날 향유하면 뭐하나. 이 국가의 시원이 되는 장소는 여전히 누구와 싸워 누구로부터 쟁취한 나라인지 매우 솔직하고 당당하게 기념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아바타》의 남자 주인공과 워싱턴이 참 닮았다. 10개의 방에 끊임 없이 손님을 들이며 영부인의 모범을 보였다는 마사와 네이리티는 또 왜 저렇게 닮았을까.

문제의 영화 "We fight to be free"

Mount Vernon Ford Orientation Center

워싱턴이 살던 집
워싱턴 묘역 앞에서 꼬맹이들에게 묵념을 시키는 선생들

아무도 가지 않는 노예기념비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