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7일 월요일

서사가 빈곤해지면 이국을 착취하라: 《섹스 앤 더 시티 2》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섹스 앤 더 시티 2》는 《Sex & the Desert》다. 뉴욕이 나오긴 하지만 이 영화는 뉴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런던의 올드미스 브리짓이 결혼하고 할 말 없어지자 태국으로 날아갔듯이, 뉴욕의 前올드미스 캐리는 두바이로 날아간다. 결혼의 중압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달아난 세 여자의 얘기는 pc하지만 힘이 없고, 홀로 꼿꼿이 싱글 섹스 라이프를 즐기는 사만다는 과장되다 못해 괴물로 묘사되고 있다. 맨하탄의 복잡한 일상과 의무들 속에서 절제 없이 소비하는 그녀들이 갖던 일말의 도발성은 이국의 낯선 존재들 앞에서의 과시적 소비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녀들의 '속깊은 게이친구'들이 결혼하며 시작하는 도입부가 주는 착취의 불쾌감 역시 이국을 착취하는 중반부의 불쾌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막판에서 캐리든 누구든 돌씽으로 만들며 끝냈다면 조금이나마 만회가 되었겠지만 후반에서마저 갈등 수습과 봉합에 급급한 이 영화는 너무 멀리 갔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진보신당

아래 글은 심상정이 사퇴 발표하기 하루 전날, 그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서 올렸다가 황급히 지운 글이다. 무능한 한명숙이 예상치 못한 선전을 한 것을 보고 결과론적으로 판단하여 노회찬에 대해 원망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의 판세에서 여러모로 동떨어져 있는 소리로 보이겠지만,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다시 이 글을 올린다. 심상정의 사퇴는 대단히 유감이지만 진보정당 내에서의 "정치인"과 평당원의 관계, 당내 민주주의와 표상의 문제에 대한 '자칫 잊을 뻔한' 화두를 되돌려 줬다는 점에서 아픈 소득이다.

그리고, 노빠들은 그 아가리 좀 닥치라. 떠다주는 숟가락도 제 입에 못넣을 정도로 무능한 前 이라크 전범 총리가 번드르한 외모빨과 사기꾼의 풍모를 풍기는 말빨로 무장한 개발주의자에게 발린 것을 두고, 왜 전쟁도 반대하고 개발도 반대하는 사람에게 와서 원망질이냐 원망질이.
-----------------------------------------------------------------------------------------------------------------

진보신당 지지와 담론 정치

진보신당이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두 상징적 정치인을 단체장 선거에 배치한 것을 두고 '소모'라 평가하는 이도 있고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신당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독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악담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진보신당을 넘어서 이른바 '진보정당' 운동이라는 것을 해온 이들에게 무척 의미 있는 연대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있었던 진보 지식인 107명 진보신당 지지선언을 보면 그간 이런 형식의 지지선언에서 보기 힘들었던 이름이 종종 보인다.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말하며 제도권 내의 의회정당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김세균, 들뢰즈 푸코 이후로는 정치운동에서 탈주한 것처럼 보이던 이진경, 소위 '문화운동'의 바운더리를 만들고서 정당운동과는 거리두기를 해왔던 강내희와 문화이론의 멤버들이 그들이다. 그런가 하면 진보신당과의 연대 문제로 분당 위기까지 겪었던 사회당 역시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평을 재선거를 준비중인 금민 전 대표가 24일 진보신당 수도권 후보 지지 선언을 했고, 인천시당도 28일 진보신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것은 "좌파라면 진보신당 밑으로 대동단결" 이런 것이 실현되었다기보다는 정당운동이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이제야 비로소 진보정당 운동의 바른 판세가 그 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민노당의 반MB 연대를 조롱하고 또 누군가는 비웃지만, 내 심정은 그들의 '솔직한' 행보가 너무나 고맙고 또 반갑다. 애초에 진보정당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달랐던 사람들이고, 지금의 행보 역시 그들의 정체성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고 진지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민노당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간 그들과 섞여 있느라 괴상한 모양새로 엎치락 뒤치락 했던 진보정당 운동의 10년 역사가 아깝다면 아까울까.

진보정당은 '혁명'용 정당이 아니다. 혁명은 누군가가 기획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잠정적인 내 견해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혁명적 모멘텀이 형성된다면, 그것이 내셔널리즘이나 인종주의, 반공주의나 패권주의, 정치적 냉소주의나 반지성주의로 오염되어 왜곡되고, 종국에는 혁명이 아닌 반혁명, 변혁이 아닌 근본적 회의로 치닫지 않기 위한 "준비된" 담론지형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정당 운동이 그런 혁명적 상황을 '준비'하는 운동 역시 아닐 것이며, 그보다는 그 "담론의 지형"을 만드는 데 중요한 한 축이 되는 운동이 될 테다. 얼마 안되는 TV토론 출연으로 각광을 받는 심상정, 노회찬의 정책 공약들과, 꽤나 흡인력 있게 잘 설계된 사회당의 '기본소득' 정책은 그런 담론 정치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