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2일 토요일

팻 메스니: 19세기말적 기계미학 혹은 백인-개인적 임프로비제이션의 완성

팻 메스니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예매를 했을 적만 해도 "오케스트리온"이라는 새 앨범+투어의 명칭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팻 옹의 열혈팬임을 인정 받아 이번 투어의 공식 티셔츠 디자인으로까지 채택된 만화가 눈고양이 화백의 그림을 보고서야 그게 1인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가 공연일인 20일에야 드디어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서 놀라움에 감탄 연발을 멈추지 못했다.

사진으로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잘 전달이 안되는데, 저 자동연주 기계들에 둘러싸인 팻 옹은 그야말로 실험실의 과학자의 포스를 풍겼다. 전자 신호로 움직이는 각각의 기계들은 신호를 받을 때마다 빛을 발했고, 저 냥반은 그게 너무나 자랑스러운지 신모델 로봇 전시회에 나온 박사과정마냥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고 설명을 해댔다. ㅋ 같이 간 선배 말마따나 연주실력이 받쳐주지 않고 그저 저런 실험만 했다면 헐렁했을텐데 실력마저 출중하니 여러모로 흡족한 연주(혹은 퍼포먼스?ㅋ)였다.
다만 팻 옹 본인이 저런 구상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해주는데 그제서야 그의 음악세계가 재즈의 시원으로부터 저 멀리 다른 어딘가로부터 유래하여 잠시 재즈를 경유했다가 다시 다른 차원으로 떠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살배기 시절 할아버지의 자동연주 피아노에 꽂혔던 것이 이 모든 사단의 배경이라며 그는 9살의 꿈을 머금게 해주었던 1920년대 뮤지션들의 자동연주 기계 실험에 대해 오마주를 던졌다. 정확히 말하면 18세기의 자동인형과 19세기 말의 기계미학의 산물이었을 저 꿈은 19세기 말에 뉴올리언즈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재즈와는 전혀 다른 미학, 판이하게 다른 인간관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출중한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중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각각의 임프로비제이션이 자유롭게 들어가고 빠져나가는 절묘한 재밍의 팀웍과 공동체적 인간관의 산물인 정통 재즈와, 프로그래밍된 자동기계-악기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통해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극대화하는 팻 옹의 재즈는 이미 다른 장르를 넘어 다른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빌 에반스, 키스 자렛, 얀 갸바렉 등의 백인 재즈를 통해 그 뿌리를 만들었던 이 사색적인 개인 음악은 19세기적 기계미학의 이상과 결합하면서 성공적으로 그 숙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구조조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기계에 밀려 이번 투어에서 제외된 팻메스니 그룹의 다른 세션들을 생각하니 잠시 러다이트 운동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역시 좋긴 좋았다는..

2010년 5월 11일 화요일

무릇 장로님과 그 종들이 명하나니

[연합] 법원, 장애인 유아 살해한 산모 선처

일찍이 '인간' 아닌 것들이 갈 길을 열어주시었던 장로님과 그 뜻을 받드는 어린 양들은 오늘도 바지런히 길을 닦고 또 닦고 있나니, 그 길을 법전에 명문화한 바 "우생학"이라는 이 시대의 정신을 우리는 찬양해 마지 않는다. 거룩하신 장로님의 종임을 스스로 명심한 판관들은 위와 같이 그 길을 넓히고 또 깊게 하여 어리석은 후손들이 따를 판례를 만들고 또 만들어 장로님의 우생 진리의 실용성을 드높이고 있도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무엇이냐? 우리 어린 양들은 장로님의 깊은 의중을 읽어 그 짧은 두 글자 사이에서도 자간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나니 그것이 바로 '실용'의 정신이다. 무릇 장로님 가라사대 인간은 '쓸모'가 있어야 하는 바, 양손 양팔 멀쩡하고 눈코귀 제대로 뚫려 있어 말끼를 못알아 듣는 일이 없어야 하나니, 일찍이 장로님께서 이 땅에 손수 트신 거룩한 물길에 한 줌 희망이 되고저 삽을 들고 땀 흘려 보탬이 될 수 있어야 '인간'이다. 이 물길의 행렬을 가로막는 사탄의 무리들이 그 씨앗을 말리고저 회유와 거짓 유혹을 거듭하지만 장로님의 일침에 회개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도다. 여기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보태어 이르나니 혹여 그 씨앗의 자리에 '인간'으로써 '쓸모'가 없는 하나님의 시험이 들어선다면 장로님을 믿고 그 싹을 자르도록 하여라. 그 죄는 장로님의 뜨거운 눈물로 모두 씻겨 나갔나니, 혹여 그 큰 뜻을 이해치 못한 네 이웃이 너를 지탄커든 우생학의 교리 제14조 1항을 참조하라고 일갈토록 하여라.

그리 하여 장로님과 그 종들이 선언하나니, 저 여인의 죄는 사하였노라.

장로님 인증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베크 옹



아놔, 프리미어에서 화면비 조절은 어떻게 하는 거임? 16:9로 간지 나게 찍었는데ㅋ 더구나 유튭에서 화면을 씹어먹은 것인지 싱크로가 어긋나는 부분도 발생 ㅡㅡ;

2010년 5월 4일 화요일

뉴 올리언즈 방문 후기

1. 도시 전체가 "재즈가 생활이고 밥벌이에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공항 이름도 루이 암스트롱 공항이고, 셔틀버스나 식당, 가게 등등에서 재즈가 흘러나온다. 어제 가본 어떤 박물관에서 들은 설명으로는 '재즈 퓨너럴'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상을 당한 가족들이 밴드를 고용하고 신문에 장례식 광고를 내면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함께 재즈를 들으며 고인을 보내는 행사라고.

2.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상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 생활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담론은 넘쳐나는데,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가는 곳곳마다 "rebirth"나 "rebuild"의 구호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허리케인 시즌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라고 묻는 사보험 광고가 뻔뻔하게 라디오를 타는 것을 보면 재난의 기억은 공공성의 강화보다는 개인적인 불안과 공포를 돈과 맞바꾸는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흑인들이 많다는 것은 느꼈지만 도시 자체가 관광지로서 의미가 크다보니 그들 생활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밖에 접할 수 없었다. 버스마다 에이즈 관련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가난한 흑인 에이즈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간다는 현실이 여전히 진행형인 듯도.

4. Jazz & Heritage 페스티벌 최고 스타였던 Pearl Jam의 공연은 나에겐 악몽이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원격 공연을 시도한 '최초'의 공연이라던가. 사회자가 나와서 그 얘기를 하고 무대 양 옆의 스크린에 사막형 군복을 입은 부대원 열 명 남짓이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는 화면이 나온다. 순간 Pearl Jam을 보러온 수천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USA"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원격 공연 따위의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갔던 나는 그 순간 나치 전당대회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펑크한 차림의 자유로운 스타일의 젊은 관중들이 일제히 국가를 연호하는 그 순간의 아이러니란. 주최측만의 의도일 것이라 애써 위안하며 참아보려 했지만, 무대에 등장한 Pearl Jam 역시 "수고하는 장병들"에게 호의의 인사를 던지고 또 다시 "USA" 러시. 원래 같은 시간대에 다른 무대에서 진행되느라 얘네 공연 40분 정도 보고 중간에 들어가려 했던 Jeff Beck 공연으로 황급히 장소를 옮겼다. 다행히 그곳에선 그런 짓은 안 하더라는. 이번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제 Pearl Jam을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5. 재즈페스티벌의 그런 시도들, "rebuild, reuse, rebirth"라는 구호와 공공성을 경유한 국가적인 제스처들을 보면 이런 로컬 단위의 문화 산업이 Nation을 지탱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것 같다. 한국이 일상에서 Nation에 관한 담론으로 과포화되어 있다가 문화산업으로 가면 마치 그에 초탈한 마냥 '글로벌'한 어딘가로 탈주(?)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편이라면, 미국은 일상에서는 아무도 Nation을 말하지 않는데 오히려 저런 혼종적인 문화 이벤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USA가 압도하는 편이랄까.. 크레올이 어떻고, 시에라 리온의 난민들이 어떻고 하며 온갖 문화적 음악적 다양성으로 뻑쩍찌근하게 돌아가던 판에서의 최고 흥행공연이 저런 프로파간다로 귀결된다는 것이 참 씁쓸하더만. 마침 뉴욕에서 무슨 테러 모의가 있었니 하면서 공항마다 위험 수위가 높다는 표지판이 붙는 여전한 911의 지배 현장.

6. 남부의 보수성은 유명하지만 그래도 피부로 느낄 일들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미국 와서 처음으로 인종 때문에 모멸감을 느껴야 했던 일들이 두어 번 있었다. 아이러니인 것은 그렇게 마주쳤던 남부의 백인들 역시 "텍사스 레드넥" 따위의 호칭으로 멸시 받는, 교육 수준 낮고 소득 수준도 낮은 하층 계급이 많다는 것. 자신의 소수성에 대한 분노를 자기보다 못한 소수자들에게 해소하는 전형적인 사이클.

7. 유스호스텔은 참 신기한 곳인게, 그냥 혼자 구경하다 올 생각으로 갔던 여행에서 쌩판 처음보는 스물댓 살의 백인 애들 세 명과 친구가 되어 3일 동안 같이 돌아다니게 만들어주었다. 미시건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는 애들인데, 대학원생이 아닌 백인들과 이렇게 가깝게 지내보긴 또 처음이군.

아래는 사진. 재즈페스티벌은 동영상만 찍었는데 어쩔지 생각중.

루이암스트롱 공항 벽면에 부착된 그림. 저것 말고도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그림도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음.


미시시피강.


프렌치쿼터에 있는 건물들이 유명한데 찍고 나서보니 대부분 관광객들을 의식한 인위적인 건물들이 많았음. 이건 좀 다른 느낌.

줄 서서 들어가야 했던 유명한 재즈 클럽 "Preservation Hall"의 전속 밴드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