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4일 화요일

뉴 올리언즈 방문 후기

1. 도시 전체가 "재즈가 생활이고 밥벌이에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공항 이름도 루이 암스트롱 공항이고, 셔틀버스나 식당, 가게 등등에서 재즈가 흘러나온다. 어제 가본 어떤 박물관에서 들은 설명으로는 '재즈 퓨너럴'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상을 당한 가족들이 밴드를 고용하고 신문에 장례식 광고를 내면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함께 재즈를 들으며 고인을 보내는 행사라고.

2.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상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 생활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담론은 넘쳐나는데,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가는 곳곳마다 "rebirth"나 "rebuild"의 구호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허리케인 시즌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라고 묻는 사보험 광고가 뻔뻔하게 라디오를 타는 것을 보면 재난의 기억은 공공성의 강화보다는 개인적인 불안과 공포를 돈과 맞바꾸는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흑인들이 많다는 것은 느꼈지만 도시 자체가 관광지로서 의미가 크다보니 그들 생활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밖에 접할 수 없었다. 버스마다 에이즈 관련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가난한 흑인 에이즈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간다는 현실이 여전히 진행형인 듯도.

4. Jazz & Heritage 페스티벌 최고 스타였던 Pearl Jam의 공연은 나에겐 악몽이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원격 공연을 시도한 '최초'의 공연이라던가. 사회자가 나와서 그 얘기를 하고 무대 양 옆의 스크린에 사막형 군복을 입은 부대원 열 명 남짓이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는 화면이 나온다. 순간 Pearl Jam을 보러온 수천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USA"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원격 공연 따위의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갔던 나는 그 순간 나치 전당대회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펑크한 차림의 자유로운 스타일의 젊은 관중들이 일제히 국가를 연호하는 그 순간의 아이러니란. 주최측만의 의도일 것이라 애써 위안하며 참아보려 했지만, 무대에 등장한 Pearl Jam 역시 "수고하는 장병들"에게 호의의 인사를 던지고 또 다시 "USA" 러시. 원래 같은 시간대에 다른 무대에서 진행되느라 얘네 공연 40분 정도 보고 중간에 들어가려 했던 Jeff Beck 공연으로 황급히 장소를 옮겼다. 다행히 그곳에선 그런 짓은 안 하더라는. 이번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제 Pearl Jam을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5. 재즈페스티벌의 그런 시도들, "rebuild, reuse, rebirth"라는 구호와 공공성을 경유한 국가적인 제스처들을 보면 이런 로컬 단위의 문화 산업이 Nation을 지탱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것 같다. 한국이 일상에서 Nation에 관한 담론으로 과포화되어 있다가 문화산업으로 가면 마치 그에 초탈한 마냥 '글로벌'한 어딘가로 탈주(?)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편이라면, 미국은 일상에서는 아무도 Nation을 말하지 않는데 오히려 저런 혼종적인 문화 이벤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USA가 압도하는 편이랄까.. 크레올이 어떻고, 시에라 리온의 난민들이 어떻고 하며 온갖 문화적 음악적 다양성으로 뻑쩍찌근하게 돌아가던 판에서의 최고 흥행공연이 저런 프로파간다로 귀결된다는 것이 참 씁쓸하더만. 마침 뉴욕에서 무슨 테러 모의가 있었니 하면서 공항마다 위험 수위가 높다는 표지판이 붙는 여전한 911의 지배 현장.

6. 남부의 보수성은 유명하지만 그래도 피부로 느낄 일들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미국 와서 처음으로 인종 때문에 모멸감을 느껴야 했던 일들이 두어 번 있었다. 아이러니인 것은 그렇게 마주쳤던 남부의 백인들 역시 "텍사스 레드넥" 따위의 호칭으로 멸시 받는, 교육 수준 낮고 소득 수준도 낮은 하층 계급이 많다는 것. 자신의 소수성에 대한 분노를 자기보다 못한 소수자들에게 해소하는 전형적인 사이클.

7. 유스호스텔은 참 신기한 곳인게, 그냥 혼자 구경하다 올 생각으로 갔던 여행에서 쌩판 처음보는 스물댓 살의 백인 애들 세 명과 친구가 되어 3일 동안 같이 돌아다니게 만들어주었다. 미시건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는 애들인데, 대학원생이 아닌 백인들과 이렇게 가깝게 지내보긴 또 처음이군.

아래는 사진. 재즈페스티벌은 동영상만 찍었는데 어쩔지 생각중.

루이암스트롱 공항 벽면에 부착된 그림. 저것 말고도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그림도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음.


미시시피강.


프렌치쿼터에 있는 건물들이 유명한데 찍고 나서보니 대부분 관광객들을 의식한 인위적인 건물들이 많았음. 이건 좀 다른 느낌.

줄 서서 들어가야 했던 유명한 재즈 클럽 "Preservation Hall"의 전속 밴드 공연.

댓글 4개:

  1. 사회학도의 참여관찰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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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꿈핵/ 참여관찰 씩이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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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후훗. Jeff Beck을 이제야 보시다니.
    얼마 전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사라졌던 모씨의 새 이름, 새 주소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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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nomen nescio/ 먼저 봐야 한다는 그 경쟁심은 또 뭐냐, 잘 보면 그만이지ㅋ 암튼 반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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