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0일 금요일

전쟁책동과 사법질서파괴, 그 다음은?

"결연한 복수"를 외치는 정치인들은 후진 기어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 선동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고, 선동으로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이적" 혐의를 씌웠다. 이제 후퇴나 방향 선회는 지지세력을 깎아먹고 반대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UN안보리에 회부를 하든, 자기들 말마따나 "경제에 타격 없는 국지전"을 벌이든 "복수"는 이제 그들의 정치적 생명이 되었다. 설령 그 복수의 상대가 실제 사건의 주모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이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라도 그 사실은 감추고 또 폐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답은 하나 밖에 없다. 복수! 복수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복수!

"정치의 자유"를 외치는 정치인들에게도 후진 기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 정보의 무단 공개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추궁과 법적 강제에 따른 "파산 공포"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소신"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설령 위헌 행위임이 판명 나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더라도 지지세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끝까지 투쟁하다 산화하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다. 이제 적은 법치질서 그 자체에 있다. 법을 쳐서 치의 무한한 자유를 얻겠다는 그들의 고귀한 소신 앞에 남은 정답 역시 하나다. 파괴! 파괴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도 파괴!

문제는 그들의 복수와 파괴가 지난 세기와는 달리 어떤 "결연한 질서"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부흥을 통한 공공의 발전이라는 신화는 땅바닥에 던져진지 오래이고, "애국"이 그저 어떤 공고한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한 이해타산에서 나온 구호임은 이제 어지간한 필부도 아는 세상이다. 복수와 파괴의 구호 아래 모인 지지자들도 숭고한 무엇인가를 지키고자 내 한몸 희생하려는 진지하고 융통성 없는 꼰대들이 아니라, 그 구호를 통해 내 잇속 침범하는 자들을 속아내자는 잔머리 따라 움직이는 뜨내기들일 뿐이다. 책임질 이 없는 구호는 공허하게 떠올랐지만, 후진기어도 브레이크도 없이 한껏 팽창할 뿐이고, 이제 이것이 어떻게 터질 것인지 우울하게 지켜볼 일이다.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종강

페이퍼 하나 남겨 두고 오늘 드디어 종강했다. 극장에서 영화본 것은 《아바타》가 마지막이었던 듯. 몰아서 《인생은 아름다워》 두 회분을 보고 몇 사람과 통화를 했다. 한국 시각으로 어제 이형표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지금도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다. "멋스럽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노신사였고, 또 여기서 말동무를 해드리고 있는...이라기보다는 거의 일방적인 말 세례를 받아드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돌아가면 꼭 찾아뵙고 멀리 떨어져 만나기 힘든 두 노인의 다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품어왔던 분인데... 참 기분이 그렇다. 요즘 추세로 따져도 오래 사신 편이고 또 긴 지병 같은 것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애써 슬픔을 덜어보려하는 것도 같다만, 내가 그 연세가 된다고 해도 사실 "오래 살아서 미련 없는 생" 따위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일 것임을 알기 때문에 계속 먹먹한 상태다. 못 들은 이야기, 1차 자료 없는 그 자체로 유일한 사료라 할, 기록 못한 얘기들도 많은데 한 '역사'가 그냥 통째로 사라져버린 느낌도 들고... 오랜 친구가 긴 고통 없이 떠났다는 소식에 애써 위안을 찾으려 드는, 이곳에 남은 비슷한 나이의 노인도 눈에 밟힌다. 다음 주는 바쁘지만 그래도 또 찾아 뵈려고 한다.

2010년 4월 16일 금요일

문근영

요새 연기 변신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
드라마 보기를 돌 같이 하여 《인생은 아름다워》만 보기로 다짐한 터라 전체를 확인하지는 못하고;;
돌아다니는 플래시 영상을 몇 개 봤다.
음.. 뭐.. 느낌이 나쁘진 않은데, 뭐랄까.. 좀 많이 낯익다 했더니.....

우리 크리스티나님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이 좀 강하게 드는데?!
귀염상 있는 얼굴을 성숙(?)하고 도발(??)적으로 보이려면 아무래도 우리 티나님만한 롤모델이 없을 것 같기도.
아님 말고 ㅋ

2010년 4월 8일 목요일

2003년 여름

여기 연구실 라운지(?)의 한쪽 벽면은 꽤 재미있는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책장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연구자들이 1년 혹은 1년 반씩 머무르면서 보던 책을 돌아갈 때 기증하고 간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취향도 각양각색이고 연속간행물도 다섯 권 넘게 있는 경우가 잘 없다. 오늘 혼자 밤새다 쉬는 중에 한권 눈에 들어왔는데 『당대비평』 2003년 여름호다. 다른 곳에서 봤으면 그냥 지나갔을 테지만 여기 있는 단 한권의 당대비평, 그리고 그해 여름에 여기를 지나쳐갔을 어느 연구자가 봤던 책이라 하니 호기심이 생겨 들여다보게 되었다.
시작한지 얼마 안된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진 특집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 당시에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 김대중'의 10년이 '잃어버린' 기간이었다는 것인데, 아마 그 영감들 입장에서는 5년 더 지나고 보니 앞쪽 5년은 잃어버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렇다고 똑 같은 표현을 그대로 당겨쓰다니 참으로 실용적이로고! 뭐 암튼 이미 그때부터 노무현의 실책들은 드러나고 있는 중이었고, 윤평중이 "지배세력의 교체"를 위한 싸움이라고 봤던 그 정부의 초기 행보들은 그보다는 개뿔 "헤쳐모여"의 판타지와 그 환각 이면에서의 지능적인 지배계급 재결집에 판을 깔아주고 있었다. 당시의 논자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얼마 전에 본 아룬다티 로이의 글도 있었는데, 경악스러운 세계의 상태에 대한 고발의 어조가 주를 이루는 그녀의 논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고발해야할 내용이 7년이 지난 지금 더 많이 생겨난 것이 차이랄까. 오바마의 세계도 911 이후 부시의 세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으니.
한국에 왔던 요한 갈퉁과 마이클 하트의 대담도 있었고(각기 따로), 그 당시 노동에 관한 꽤 신선한 담론이었던 "노동사회"에 대해 홀거 하이데가 특별 기고를 하기도 했네. 독자 투고란에는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어느 낯익은 이름이 있었고, 문화비평란에는 당시로서는 가장 뜨거운 영화였을 《살인의 추억》에 대한 비평이 있었다.
그때 난 뭘 했나.. 생각해봤다. 아마 가장 혼란스러운(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시기였던 것 같다. 여러 사람들과 '새로운' 시도들을 했던 것도 같고,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어리버리 했던 것도 같고. 당대비평의 영화평론을 보니, 같이 세미나 하던 후배들과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나왔더니 한 여자 후배가 "보는 내내 무서웠다"고 했던 것도 기억나네.
시간 참 빨리 간다.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이 희뿌옇게 보이던 것도 어제 같은데, 그러고도 반년 뒤에 있었던 일들이 이렇게 회고의 대상이 되다니. 그때 당대비평을 봤던 저 연구자는 지금 무슨 연구를 하고 있을까.

2010년 4월 5일 월요일

"온 식구가 모여 보는 가족드라마"라는 프레임

이미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가 개봉한지도 15년이 넘어가는 시점인지라 영화나 미드 좀 본다는 사람들은 요즘 《인생은 아름다워》가 보여주는 동성애 묘사를 구닥다리로 여기기도 한다. 뭐 좀 낡긴 했어도 흥미로운건 그 '구닥다리' 조차도 "온 가족"이 보는 "주말연속극"이라는 프레임에 들어오면 무척 급진적인 내러티브가 된다는 점이다.

[서울신문] 인생은 아름다워, 동성애 장면에 시청자 '발끈'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궁금한 것은, 정말 저 시간대에 TV 앞에는 온 식구가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냐는 점이다. 뭐 그런 집들도 있겠지만 사실 대학생만 되어도 애들은 주말 저녁에 데이트하거나 술마시러 나가놀기 십상이고, 초중고딩들은 주말 뭐 그딴게 어디있으며, 직장인들도 토요일 반나절 퍼질러 자다가 토요일 저녁쯤에야 약속 잡아 나가놀지 않냔 말이다. 어린 애들 딸린 30대 핵가족들도 있겠다만, 30대인 내 입장에서 볼 때 그 사람들 주말 연속극 열심히 안본다. 보더라도 김수현 할머니 드라마는 자기들 코드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다반사다. 결국 그 시간에 열심히 '주말연속극'을 보는 사람들은 50~60줄을 넘긴 '어른'들, 애들이 나가놀아서 외로운, 그러나 본인들 만큼은 주말 저녁에 집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그 어르신들 아닌가? 그냥 자기들이 보기 싫은 낯선 소재인거지, 애들 교육이고 나발이고 핑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노인 아닌 노인네들(이제 60대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라지)의 페다고지로 김수현은 여전히 급진적인 텍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