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근황

1년 반 가량 있던 곳에서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갈 날이 대략 한 달 남았고,
지긋지긋하다 매번 치를 떨지만 또 다시 지루한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1주일 머무를 예정이고,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들, 마음 바쁜 일들, 겉도는 연말 분위기, 추위 등등으로 조금 우울한 중이고,
별 생각 없이 집어들었던 한강의 《검은 사슴》을 읽고 그 한없이 우울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또 다른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고,
《트론》이 리메이크 되어 개봉했다는데 저걸 챙겨봐야 하나 그냥 생까야 하나 고민 중이고,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꾸역꾸역 써내야 하는 글이 하나 있어 편두통이 생길 지경이고,

아무튼 그다지 좋은 정신 상태는 아님.

2010년 10월 4일 월요일

로저 워터스《The Wall》 30주년 기념 월드투어 후기


2010. 10. 3. 8:00 pm
TD Garden, Boston, MA

그야 말로 기대를 한참 뛰어넘은 공연이었다. 《The Wall》 앨범의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 그것도 더 이상 핑크 플로이드가 아닌 로저 워터스의 단독 공연이라는 점에서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을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말로만 듣던 핑크 플로이드 식의 스펙터클을 재연만 해준다면 감사할 따름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예상 외로 아주 입이 딱 벌어져서 나올 수 있었다. 그건 단지 스펙터클 때문이 아니라 공연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현재적 의미 때문이었다. 애초에 《The Wall》 앨범 자체가 단순히 교육에 대한 비판 만이 아닌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 전쟁경제와 재생산의 문제에 대한 비판을 두루 아우르는 수작이었지만, 그래도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것을 다시 공연한다는 것은 자칫 또 하나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마도 로저 워터스도 그 부분을 고민했을 것 같고, 그 결과는 아주 시사적이다.

불꽃이 일고 전투기가 공습사이렌과 함께 무대로 돌진하고 헬리콥터가 관객들에게 핀라이트를 겨누는 개막의 스펙터클이 지나고 대형 애드벌룬으로 된 교사의 형상과 그에 대항하는 어린 학생들의 합창 등등이 나오는 초반까지는 《The Wall》의 뮤직비디오나 영화를 본 이들에게 익숙한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그 와중에 무대 앞과 뒤를 가로지르며 계속해서 벽이 쌓아올려지고 어느새 벽은 스크린의 역할을 겸하며 다양한 비디오 아트를 투영해낸다. 아마 그 즈음부터였던 것 같은데 오바마의 얼굴과 CNN의 로고, 정유회사 쉘(Shell)의 CI 등이 빠르게 화면에 스쳐간다. 그와 함께 나타나는 이라크 공습의 이미지, 관타나모 수용소의 학대 사진의 이미지는 이 공연이 "현재"를 겨냥하고 있음을 강하게 역설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벽이 어느덧 무대를 완전히 가로막을 무렵, 변형가능한 한쪽 벽면을 활용한 세트 무대에는 그야말로 아주 전형적인 미국인 혹은 영국인의 일상이 묘사된다. 소파에 앉아 테이블에 발을 걸치고 TV를 보는 그(로저 워터스)의 일상 옆으로 남은 벽면의 거대한 스크린은 중동 어딘가의 마을에 떨어지는 폭탄의 파열을 담아낸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하얀색 이어폰을 낀 색색의 소들이 현란하게 워킹을 하고 하얀 로고타입으로 "iTeach" "iFollow" "iResist" 등의 단어가 떠다니는 아이팟 패러디가 나타나는가 하면, 네오 나치를 연상케 하는 제복과 깃발의 장면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의 동참을 호소하는 지도자(로저 워터스)가 확성기로 선동에 나선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영상은 WikiLeak가 폭로해 파문이 일었던, 비무장 이라크 민간인들을 향한 미군들의 총격 살인장면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Bring the Boys Back Home"의 영상 퍼포먼스에서였다. 이 순간을 로저 워터스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야말로 미국인들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찰나였다. "발사된 총과 로켓은 헐벗은 이들, 굶주리고 버림 받은 이들에게 향하는 도둑질이다"라는 메시지가 나타나고 곧 이어 어느 군복 입은 미군 병사가 귀환하여 딸과 재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재회 장면은 미국의 주류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감동 코드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들이 마침내 포옹하자 관중들은 열광의 환호성과 박수로 들끌었다. 그건 마치 이 병사의 "애국적인" 복무가 충실하게 수행된 후에 조국의 가족과 재회했음을 모두가 인정해준다는 의미의 환호성, 철군이 아니라 복무기간을 성실히 마친 병사의 귀환에 대한 지지의 환호성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에 이어지는 장면은 다시 "도둑질(the Theft)"을 당한 이교도 아이들의 망연자실한 얼굴들, 그리고 그 위로 뜨는 빨간 색의 커다란 타이포그라피 "Bring the Boys Back Home (그 사내들을 집으로 복귀시켜라 - 철군시켜라)"이었다. 이때 환호하던 관중들은 순간 당황한듯 주춤했고, 이내 다시 이 곡의 마무리에 환호했지만 병사 귀환 장면의 환호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적 애국주의의 일상적 한 단면이 폭로되는 순간, 30년된 명곡에의 환호와 국가에의 환호가 한순간 파열음을 내는 순간이었다.

공연은 벽을 허무는 퍼포먼스와 함께 끝났다. 데이빗 길모어의 목소리로 "Another Brick in the Wall"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로저 워터스의 목소리로 듣는 "Hey You"로 위안이 되는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2010년 9월 22일 수요일

노무현과 노무현이 마주 보는 장면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후속으로 보고 있는 《성균관 스캔들》. 재미 있게 보고 있는데 중간 중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이 드라마에 새겨진 노무현식 자유주의의 이상향이다. 뒤로 갈 수록 강조되는 "탕평책"의 이데올로기도 그렇지만 특히 주요 배역을 통해 인물화되는 이념형으로서의 영웅적 정치인상이 더 그렇다.



여성인 김윤희가 '김윤식'이라는 이름으로 성균관 입학 자격을 받는 이 장면은 그래서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왕이라는 최고 통치 권력에게조차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피력하여 고사장을 일순간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 이선준은 여전히 시퍼런 권력을 등에 업고 있던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지던 젊은 노무현과 닮았다. 그런 당돌한 젊은이들을 보면서 상식을 뒤엎는 인사를 감행하는 정조는 서열을 파괴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하던 대통령 노무현과 닮았다.

노무현과 노무현이 마주보는 이 장면, 이 장면은 달게 만들어진 장면이지만 나에겐 쓰다. 수면 위로 올라왔던 판타지는 5년 동안 허위임이 밝혀졌지만 그 후의 5년간은 다시 그 판타지를 갈구하게 만들고 있다. 그 둘은 함께하여 서로를 완결 짓는 판타지의 한 플롯임이 분명하다.

2010년 9월 8일 수요일

내 말이!

꼴주사들하고 같은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는게 싫어서 침묵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천인공노할 미제"의 입에서도 같은 소리가 나오네 ㅋ
http://news.nate.com/view/20100908n01281

2010년 9월 6일 월요일

The xx



작년에 데뷔한 영국 밴드라는데 인기가 좋군. 살짝 누벨바그 느낌도 나고.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못봐주게 어설프네



프로파간다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매혹적이기는커녕 어설프다 못해 조소를 품게 만든다면 당장 그 제작자를 파면해야 할 것이다.
물량으로 승부하면 된다는 발상은 박통 때 공보부 직원들도 하지 않던 직무유기다.
명박이는 당장 연합뉴스 취재부를 어떻게 좀 해라.
못봐주겠다.

이건..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아트잖아..

저 노동조합 조끼입은 아저씨 좀 봐라. 저 외면하는 눈빛 하며, 항문 불편하게 굳이 두개 의자에 걸쳐 앉은 어색함!
반대편 창문에 비치는 빽빽히 끼어 앉은 사람들과, 감히 장관님(!) 옆에 끼어앉지 못해 넓게 비워둔 저 공간적 대비!
무가지로 얼굴 가린 여성은 한쪽 눈만 살짝 걸친 채 이쪽을 훔쳐보고,
창문에는 브레히트적으로 노출된 두 개의 카메라가!

사진기자 예술할려 그러는데 명박이 뭐하냐, 안잡아가고!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말의 밴드" 추천!

뉴올리언즈에서 발견한 밴드인데 찾아보니 올해 새 앨범을 냈고,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컨트리 음악풍이 섞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살짝 처연한 느낌도 있다. 요즘 즐겨 듣는 중!






그나저나 이번 학기 공연 라인업은 이기팝(Iggy and the Stooges) - 로저 워터스(The Wall 30th anniversary tour) - 벨 앤 세바스찬 -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and the 4th Dimension)!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전쟁경제의 신흥 산업 - 탈애굽기

몇 년 전 아프간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다가 납치된 사람들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전쟁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때 나의 논지는 "분쟁 지역에서의 민간인 구호와 의료봉사 활동은 새로운 전쟁의 중요한 시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놓을 수 없는 인도적 가치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더해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은 "분쟁 지역에서의 민간 외국인 납치는 협상 자금이 오가는 단기적 시장으로서 뿐 아니라 지속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파생상품 시장을 창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신흥 산업이란 무엇이냐. 바로 이교도로부터의 탈출기, 21세기판 탈애굽기다. 식민주의의 유구한 전통은 이미 12~13세기 때부터 이교도의 땅을 누비는 견문록과 여행서들로 출판시장에서 짭짤한 수익을 창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에서 클릭질만 몇 번 하면 아마존 오지 탐험도 좌르륵 코스가 나오는 마당에 그저 평범한 견문록으로 시장에서 주목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전쟁의 시대는 이처럼 답보상태에 놓인 출판 시장에도 블루오션을 제시한다.

주체신을 믿는 김씨 왕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알라신을 믿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이나 "건전한" 미합중국의 시민들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대상"이지만, 공포는 다른 한편으로 아주 잘 팔리는 상품이기도 하다. 언론인의 본분은 "다른 것 필요 없고 그저 주목받기"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로라 링과 유나 리 씨는 작년 김씨 왕조의 소굴로 직접 잠입하는 글로벌 스펙터클로 클린턴 남편까지 캐스팅에 성공하는 큰 흥행을 거두었는데, 어느덧 우리는 그 두 "기자"분들의 수기를 아마존닷컴에서 주문할 수 있다. 단독 주연이 아닌 더블캐스팅으로 대박 친 것이 못내 아까웠는지 두 사람은 책을 따로 냄으로써 소득을 쪼개는 불쾌함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Somewhere Inside: One Sister's Captivity in North Korea and the Other's Fight to Bring Her Home』, 『The World Is Bigger Now: An American Journalist's Release from Captivity in North Korea . . . A Remarkable Story of Faith, Family, and Forgiveness』). 애초에 김씨왕조의 "미개한" 이교도들도 감히 미합중국의 기자님들을 해할 수는 없었을 터, 저 현명한 두 아시안 아메리칸은 블루오션을 선점하여 올라앉을 돈방석을 찾았다.

이에 질세냐. 하나님의 나라 미합중국을 본보기로 열심히 토착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삽의 민족"에게도 기회는 있다. 다만 이곳은 "유교 자본주의"라 자처하는 "사우스 코리아"이니 로라나 유나처럼 닥치고 알라딘닷컴에 올리지 못하는 불편함은 있다. 유교 역시 이교도의 신앙이니 두고두고 멸시해주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 기독교 주식회사의 사업가들은 유교가 만들어놓은 "체면"과 "명분"의 질서를 산업적 기반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필요한 것은 대놓고 상품을 진열대에 올려놓는 일이 아니라, 돈 낼 사람들과 돈 거둘 사람들을 조직하고 "유교적" 질서 속으로 밀어넣는 일이다. 비매품인 아프간 탈출기가 돈 벌어주는 상품이 될 수 있는 바탕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은평을 선거

사회당 금민 은평을 후보가 진보신당 서울시당의 공식 지지를 받았다. 아마도 이것은 이번 재보궐 선거로 그치지 않고, 향후의 통합 진보정당 논의에 상당히 큰 바탕이 될 것이다. 진보신당은 이번 결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오른쪽에 있는 민노당 뿐 아니라 왼쪽에도 정당이 하나 더 있다고 최초로 인정한 셈이다. 여기까지 오는데는 김수행, 김세균, 손호철 같은 좌파 교수들과 이갑용 등 진보신당 밖 좌파들의 압박이 컸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변수로는 심상정의 사퇴를 중심으로 한 당내 우파의 커밍아웃과 그에 대한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노무현의 자살을 통한 자유주의 우파의 결집과 그들이 '진보'라는 레토릭을 선점하며 만들어낸 반MB전선의 단기적 승리가 있을테고. 정치적 변동이란 것이 얼마간의 필연과 또 얼마간의 우연(이를테면 노무현을 등에 업은 자유주의 우파의 기사회생 같은)이 만들어내는 균형점에서 이루어진다고 요즘은 생각하지만, 아마도 사회당 사람들은 지금쯤 자신들이 만들어낸 결과를 "역사적 필연"으로 설명하고 한껏 고취되어 있을 것이다. 우희종, 우석훈, 최영미 등의 지지유세나 아르바이트생 88인 지지 선언 등 선거운동도 나름 아기자기하게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사진으로 보이는 선거운동원들은 정말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조직노선이 싫어서, 아니 그 조직문화와 필연적(!)으로 맞닿아있는 정치 노선에 회의를 느끼고 결별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들의 기쁨에 함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마 그들로서는 20년 넘게 취해온 노선이 사상 처음으로 현실화된 순간일 것이다.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미국에서 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의 편치 않은 관계의 대부분은 아시아계 탓이다. 직장에서 중간관리자가 더 악랄하고, 지주보다 마름이 더 지독하듯이, 명예백인이 되고 싶은 황인종들이 흑인들 대하는 꼴을 보면 참 가당찮다. 그래봤자 현실은 황인종 대부분이 '자영업'자로, 그러니까 자기 돈 끌고 와 퍼다 넣어서 겨우겨우 시민 행세하며 살아가는 데 반해, 흑인들은 엄연히 임노동 위계질서의 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관공서에서 민원을 상대하는 일이나 건물 출입관리, 대중교통 운전이나 레스토랑의 매니지먼트 등 단순사무직부터 기능직까지의 영역에서 흑인들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보다 저임금의 서비스 노동의 대부분은 히스패닉이 맡아 하는 구조랄까. 아시아계는 소수의 전문직과 대다수의 자영업, 그나마도 같은 아시아계를 상대하는 자영업이 대부분.

뭐 그건 그렇고. 난 어차피 아시아계 미국인도 아닌 외국인인지라 살짝 관망하는 포지션에 서있는데, 간혹 당혹스러운 일이 생기곤 한다. 관공서의 경비직이나 출입관리직도 대부분 흑인이 맡고 있고, 내가 들락거리는 곳도 거의 90%가 흑인인데, 간혹 이들이 출입자들을 알아서 구분지어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상하곤 한다. 예를 들어 평상시에는 출입카드를 잘 확인 안하는 정문에서 다른 백인 출입자는 그냥 들여보내고 나에게는 카드를 꺼내게 한다든지 하는 일들.. 혹은 대충 몇 주 연속 얼굴을 보다 보면 어느 선에서 생략되는 몇 가지 확인 절차들(특히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절차상의 절차들)이 꼭 내 앞에서는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들이 아시아계인 나를 더 감시의 대상으로 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웃긴건, 그런 상황에 뾰쪽하게 대응하는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이다. 지난 겨울에 한번, 어제 한번 두번에 걸쳐 거의 똑같은 반응에 황망한 웃음을 짓게 되었는데, 뭔고 하니.. 그 불편한 확인 절차에 날선 말투로 받아치는 내게 매우 순진한 표정으로 "어, 너 이 DVD레코더 어디서 샀니? 이거 컴퓨터 없이도 되는거야? 그거 산 곳 어딘지 알려줄 수 있어?" 이러고 묻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등록된 일련번호와 허용된 물품을 깐깐하게 확인하던 녀석이 이렇게 순진하게 내 물건에 호기심을 나타내면, 까칠한 반응을 준비하며 굳어있던 표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민망해지면서 허탈하게 웃게 된달까.

어쩌면 그게 그들의 처세술일 수도 있고, 처세술일 정도로 교활해 보이진 않으니 정말 순진한 사람들인 것도 같고. 非백인들에 대한 엄격함은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적응해버린 삶의 방편일지도 모르겠고.

2010년 7월 1일 목요일

창법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 2

신중현 옹께서 은퇴공연 이후에 오랜만에 무대에 서신단다([공연정보]). 이번에도 못가보는 것이 무척 아쉽다만, 공연 소개 문구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찾게 되어 옛날에 쓴 글을 생각나게 하는구나.

락의 저항정신
1970년대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갖은 탄압속에서도 ‘락’의
저항정신을 고수했던 그.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가 발표한 ‘아름다운 강산’은 ‘4대강 사업’과 맞물려 환경보전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에 특히 가슴에 와닿는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나뭇잎 푸르게/강물도
푸르게/아름다운 이 곳에 네가 있고 내가 있네”
이번 무대에서는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이 곡을 부릅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는 올곧은 창법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아래는 예전 블로그에서 가장 방문수가 높았던 문제의 글 ㅋ


창법의 차이가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

신중현과 박정희 정권 사이의 유명한 일화로, 그의 대표작인 [아름다운 강산]의 탄생 비화가 있다. 당시 여러 가수들을 통해 히트곡을 만들어냈던 신중현에게 집권당이던 공화당에서 전화를 걸어와 박통 찬가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신중현은 잠시 고민하고는 거절했고, 조금 뒤에 청와대에서 비슷한 전화가 걸려왔으나 역시 거절했다고 한다. 신중현을 비롯한 록뮤지션들을 대거 철창 속에 가두었던 대마초 파동은 이미 그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데, 어찌 되었든 권력의 주문을 연거푸 거절한 입장에서 신중현은 이 곡을 만들었다.


작사 신중현
작곡 신중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나뭇잎 푸르게 /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 달려보자 저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 말해보자 새희망을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마음

우리는 이땅위에 /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찬란하게 빛나는 / 붉은태양이 비추고
하얀물결 넘치는 / 저바다와 함께 있네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사랑하는 그대와 / 노래하리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먼훗날에 / 너와나 살고지고
영원한 이곳에 / 우리의 새꿈을
만들어 / 보고파

봄여름이 지나면 / 가을겨울이 온다네
아름다운 강산

너의 마음은 나의 마음 /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
너와 나는 한마음 / 너와나

우리 영원히 영원히 / 사랑 영원히 영원히
우리 모두다 모두다 / 끝없이 다정해

가사로만 보면 너무도 노골적인 국가 예찬이지만, 그 속에는 직설어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어와 역설이 숨겨져 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김정미가 부른 버전이다. 중앙정보부로부터 '퇴폐적인 창법'으로 지목받았던 그녀는 이 곡에서도 퇴폐미를 마음껏 발산한다. 가령 "그얼마나 좋은가 / 우리사는 이곳에" 부분에서 콧소리가 섞여 울리는 부분에 이르면 가사의 내용과 창법이 묘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여가수의 색기 어린 창법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을 얼마나 곤혹스럽게 했을지 짐작해보라.

김정미 버전의 반어법을 증명해주는 것은 그 정반대편에 있는 이선희 버전이다. 맑은 목소리와 내지르는 창법의 이선희는 직설적인 가사를 직설적인 창법으로 배가시킨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이 강산이 아름답고 '선진조국의 드높은 기상'이 한껏 와닿는 느낌이다. 반어법을 무력화시키는 이 모범생 가수의 단정함!
그녀의 단정함은 산울림의 단정함이 의도했던 은근한 조롱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야말로 순도 100%의 단정함. 이것은 이후 그녀의 정치적 선택과도 연속선상에 있다. '퇴폐적'인 의도로 탄생된 이 곡이 어느새 이선희라는 '국민가수'의 대표곡으로 탈바꿈한 데에는, 그런 단정함을 사랑했던 권력과 언론의 부추김 또한 있었음을 쉽게 추리해 낼 수 있다.

두 가수, 두 창법이 빚어내는 이 차이가 내가 김정미를 듣고 또 듣는 이유다.


2010년 6월 7일 월요일

서사가 빈곤해지면 이국을 착취하라: 《섹스 앤 더 시티 2》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섹스 앤 더 시티 2》는 《Sex & the Desert》다. 뉴욕이 나오긴 하지만 이 영화는 뉴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런던의 올드미스 브리짓이 결혼하고 할 말 없어지자 태국으로 날아갔듯이, 뉴욕의 前올드미스 캐리는 두바이로 날아간다. 결혼의 중압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달아난 세 여자의 얘기는 pc하지만 힘이 없고, 홀로 꼿꼿이 싱글 섹스 라이프를 즐기는 사만다는 과장되다 못해 괴물로 묘사되고 있다. 맨하탄의 복잡한 일상과 의무들 속에서 절제 없이 소비하는 그녀들이 갖던 일말의 도발성은 이국의 낯선 존재들 앞에서의 과시적 소비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녀들의 '속깊은 게이친구'들이 결혼하며 시작하는 도입부가 주는 착취의 불쾌감 역시 이국을 착취하는 중반부의 불쾌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막판에서 캐리든 누구든 돌씽으로 만들며 끝냈다면 조금이나마 만회가 되었겠지만 후반에서마저 갈등 수습과 봉합에 급급한 이 영화는 너무 멀리 갔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진보신당

아래 글은 심상정이 사퇴 발표하기 하루 전날, 그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서 올렸다가 황급히 지운 글이다. 무능한 한명숙이 예상치 못한 선전을 한 것을 보고 결과론적으로 판단하여 노회찬에 대해 원망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의 판세에서 여러모로 동떨어져 있는 소리로 보이겠지만,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다시 이 글을 올린다. 심상정의 사퇴는 대단히 유감이지만 진보정당 내에서의 "정치인"과 평당원의 관계, 당내 민주주의와 표상의 문제에 대한 '자칫 잊을 뻔한' 화두를 되돌려 줬다는 점에서 아픈 소득이다.

그리고, 노빠들은 그 아가리 좀 닥치라. 떠다주는 숟가락도 제 입에 못넣을 정도로 무능한 前 이라크 전범 총리가 번드르한 외모빨과 사기꾼의 풍모를 풍기는 말빨로 무장한 개발주의자에게 발린 것을 두고, 왜 전쟁도 반대하고 개발도 반대하는 사람에게 와서 원망질이냐 원망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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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지지와 담론 정치

진보신당이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두 상징적 정치인을 단체장 선거에 배치한 것을 두고 '소모'라 평가하는 이도 있고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신당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독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악담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진보신당을 넘어서 이른바 '진보정당' 운동이라는 것을 해온 이들에게 무척 의미 있는 연대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있었던 진보 지식인 107명 진보신당 지지선언을 보면 그간 이런 형식의 지지선언에서 보기 힘들었던 이름이 종종 보인다.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말하며 제도권 내의 의회정당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김세균, 들뢰즈 푸코 이후로는 정치운동에서 탈주한 것처럼 보이던 이진경, 소위 '문화운동'의 바운더리를 만들고서 정당운동과는 거리두기를 해왔던 강내희와 문화이론의 멤버들이 그들이다. 그런가 하면 진보신당과의 연대 문제로 분당 위기까지 겪었던 사회당 역시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평을 재선거를 준비중인 금민 전 대표가 24일 진보신당 수도권 후보 지지 선언을 했고, 인천시당도 28일 진보신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것은 "좌파라면 진보신당 밑으로 대동단결" 이런 것이 실현되었다기보다는 정당운동이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이제야 비로소 진보정당 운동의 바른 판세가 그 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민노당의 반MB 연대를 조롱하고 또 누군가는 비웃지만, 내 심정은 그들의 '솔직한' 행보가 너무나 고맙고 또 반갑다. 애초에 진보정당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달랐던 사람들이고, 지금의 행보 역시 그들의 정체성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고 진지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민노당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간 그들과 섞여 있느라 괴상한 모양새로 엎치락 뒤치락 했던 진보정당 운동의 10년 역사가 아깝다면 아까울까.

진보정당은 '혁명'용 정당이 아니다. 혁명은 누군가가 기획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잠정적인 내 견해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혁명적 모멘텀이 형성된다면, 그것이 내셔널리즘이나 인종주의, 반공주의나 패권주의, 정치적 냉소주의나 반지성주의로 오염되어 왜곡되고, 종국에는 혁명이 아닌 반혁명, 변혁이 아닌 근본적 회의로 치닫지 않기 위한 "준비된" 담론지형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정당 운동이 그런 혁명적 상황을 '준비'하는 운동 역시 아닐 것이며, 그보다는 그 "담론의 지형"을 만드는 데 중요한 한 축이 되는 운동이 될 테다. 얼마 안되는 TV토론 출연으로 각광을 받는 심상정, 노회찬의 정책 공약들과, 꽤나 흡인력 있게 잘 설계된 사회당의 '기본소득' 정책은 그런 담론 정치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팻 메스니: 19세기말적 기계미학 혹은 백인-개인적 임프로비제이션의 완성

팻 메스니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예매를 했을 적만 해도 "오케스트리온"이라는 새 앨범+투어의 명칭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팻 옹의 열혈팬임을 인정 받아 이번 투어의 공식 티셔츠 디자인으로까지 채택된 만화가 눈고양이 화백의 그림을 보고서야 그게 1인 오케스트레이션 시스템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가 공연일인 20일에야 드디어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서 놀라움에 감탄 연발을 멈추지 못했다.

사진으로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잘 전달이 안되는데, 저 자동연주 기계들에 둘러싸인 팻 옹은 그야말로 실험실의 과학자의 포스를 풍겼다. 전자 신호로 움직이는 각각의 기계들은 신호를 받을 때마다 빛을 발했고, 저 냥반은 그게 너무나 자랑스러운지 신모델 로봇 전시회에 나온 박사과정마냥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고 설명을 해댔다. ㅋ 같이 간 선배 말마따나 연주실력이 받쳐주지 않고 그저 저런 실험만 했다면 헐렁했을텐데 실력마저 출중하니 여러모로 흡족한 연주(혹은 퍼포먼스?ㅋ)였다.
다만 팻 옹 본인이 저런 구상을 하게 된 계기를 말해주는데 그제서야 그의 음악세계가 재즈의 시원으로부터 저 멀리 다른 어딘가로부터 유래하여 잠시 재즈를 경유했다가 다시 다른 차원으로 떠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살배기 시절 할아버지의 자동연주 피아노에 꽂혔던 것이 이 모든 사단의 배경이라며 그는 9살의 꿈을 머금게 해주었던 1920년대 뮤지션들의 자동연주 기계 실험에 대해 오마주를 던졌다. 정확히 말하면 18세기의 자동인형과 19세기 말의 기계미학의 산물이었을 저 꿈은 19세기 말에 뉴올리언즈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던 재즈와는 전혀 다른 미학, 판이하게 다른 인간관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출중한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중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각각의 임프로비제이션이 자유롭게 들어가고 빠져나가는 절묘한 재밍의 팀웍과 공동체적 인간관의 산물인 정통 재즈와, 프로그래밍된 자동기계-악기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통해 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극대화하는 팻 옹의 재즈는 이미 다른 장르를 넘어 다른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빌 에반스, 키스 자렛, 얀 갸바렉 등의 백인 재즈를 통해 그 뿌리를 만들었던 이 사색적인 개인 음악은 19세기적 기계미학의 이상과 결합하면서 성공적으로 그 숙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구조조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기계에 밀려 이번 투어에서 제외된 팻메스니 그룹의 다른 세션들을 생각하니 잠시 러다이트 운동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역시 좋긴 좋았다는..

2010년 5월 11일 화요일

무릇 장로님과 그 종들이 명하나니

[연합] 법원, 장애인 유아 살해한 산모 선처

일찍이 '인간' 아닌 것들이 갈 길을 열어주시었던 장로님과 그 뜻을 받드는 어린 양들은 오늘도 바지런히 길을 닦고 또 닦고 있나니, 그 길을 법전에 명문화한 바 "우생학"이라는 이 시대의 정신을 우리는 찬양해 마지 않는다. 거룩하신 장로님의 종임을 스스로 명심한 판관들은 위와 같이 그 길을 넓히고 또 깊게 하여 어리석은 후손들이 따를 판례를 만들고 또 만들어 장로님의 우생 진리의 실용성을 드높이고 있도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무엇이냐? 우리 어린 양들은 장로님의 깊은 의중을 읽어 그 짧은 두 글자 사이에서도 자간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나니 그것이 바로 '실용'의 정신이다. 무릇 장로님 가라사대 인간은 '쓸모'가 있어야 하는 바, 양손 양팔 멀쩡하고 눈코귀 제대로 뚫려 있어 말끼를 못알아 듣는 일이 없어야 하나니, 일찍이 장로님께서 이 땅에 손수 트신 거룩한 물길에 한 줌 희망이 되고저 삽을 들고 땀 흘려 보탬이 될 수 있어야 '인간'이다. 이 물길의 행렬을 가로막는 사탄의 무리들이 그 씨앗을 말리고저 회유와 거짓 유혹을 거듭하지만 장로님의 일침에 회개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도다. 여기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 보태어 이르나니 혹여 그 씨앗의 자리에 '인간'으로써 '쓸모'가 없는 하나님의 시험이 들어선다면 장로님을 믿고 그 싹을 자르도록 하여라. 그 죄는 장로님의 뜨거운 눈물로 모두 씻겨 나갔나니, 혹여 그 큰 뜻을 이해치 못한 네 이웃이 너를 지탄커든 우생학의 교리 제14조 1항을 참조하라고 일갈토록 하여라.

그리 하여 장로님과 그 종들이 선언하나니, 저 여인의 죄는 사하였노라.

장로님 인증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베크 옹



아놔, 프리미어에서 화면비 조절은 어떻게 하는 거임? 16:9로 간지 나게 찍었는데ㅋ 더구나 유튭에서 화면을 씹어먹은 것인지 싱크로가 어긋나는 부분도 발생 ㅡㅡ;

2010년 5월 4일 화요일

뉴 올리언즈 방문 후기

1. 도시 전체가 "재즈가 생활이고 밥벌이에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공항 이름도 루이 암스트롱 공항이고, 셔틀버스나 식당, 가게 등등에서 재즈가 흘러나온다. 어제 가본 어떤 박물관에서 들은 설명으로는 '재즈 퓨너럴'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상을 당한 가족들이 밴드를 고용하고 신문에 장례식 광고를 내면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함께 재즈를 들으며 고인을 보내는 행사라고.

2.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상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 생활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담론은 넘쳐나는데,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가는 곳곳마다 "rebirth"나 "rebuild"의 구호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허리케인 시즌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라고 묻는 사보험 광고가 뻔뻔하게 라디오를 타는 것을 보면 재난의 기억은 공공성의 강화보다는 개인적인 불안과 공포를 돈과 맞바꾸는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흑인들이 많다는 것은 느꼈지만 도시 자체가 관광지로서 의미가 크다보니 그들 생활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밖에 접할 수 없었다. 버스마다 에이즈 관련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가난한 흑인 에이즈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없이 죽어간다는 현실이 여전히 진행형인 듯도.

4. Jazz & Heritage 페스티벌 최고 스타였던 Pearl Jam의 공연은 나에겐 악몽이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원격 공연을 시도한 '최초'의 공연이라던가. 사회자가 나와서 그 얘기를 하고 무대 양 옆의 스크린에 사막형 군복을 입은 부대원 열 명 남짓이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는 화면이 나온다. 순간 Pearl Jam을 보러온 수천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USA"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원격 공연 따위의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갔던 나는 그 순간 나치 전당대회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공포를 느껴야 했다. 펑크한 차림의 자유로운 스타일의 젊은 관중들이 일제히 국가를 연호하는 그 순간의 아이러니란. 주최측만의 의도일 것이라 애써 위안하며 참아보려 했지만, 무대에 등장한 Pearl Jam 역시 "수고하는 장병들"에게 호의의 인사를 던지고 또 다시 "USA" 러시. 원래 같은 시간대에 다른 무대에서 진행되느라 얘네 공연 40분 정도 보고 중간에 들어가려 했던 Jeff Beck 공연으로 황급히 장소를 옮겼다. 다행히 그곳에선 그런 짓은 안 하더라는. 이번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이제 Pearl Jam을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5. 재즈페스티벌의 그런 시도들, "rebuild, reuse, rebirth"라는 구호와 공공성을 경유한 국가적인 제스처들을 보면 이런 로컬 단위의 문화 산업이 Nation을 지탱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것 같다. 한국이 일상에서 Nation에 관한 담론으로 과포화되어 있다가 문화산업으로 가면 마치 그에 초탈한 마냥 '글로벌'한 어딘가로 탈주(?)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편이라면, 미국은 일상에서는 아무도 Nation을 말하지 않는데 오히려 저런 혼종적인 문화 이벤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USA가 압도하는 편이랄까.. 크레올이 어떻고, 시에라 리온의 난민들이 어떻고 하며 온갖 문화적 음악적 다양성으로 뻑쩍찌근하게 돌아가던 판에서의 최고 흥행공연이 저런 프로파간다로 귀결된다는 것이 참 씁쓸하더만. 마침 뉴욕에서 무슨 테러 모의가 있었니 하면서 공항마다 위험 수위가 높다는 표지판이 붙는 여전한 911의 지배 현장.

6. 남부의 보수성은 유명하지만 그래도 피부로 느낄 일들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미국 와서 처음으로 인종 때문에 모멸감을 느껴야 했던 일들이 두어 번 있었다. 아이러니인 것은 그렇게 마주쳤던 남부의 백인들 역시 "텍사스 레드넥" 따위의 호칭으로 멸시 받는, 교육 수준 낮고 소득 수준도 낮은 하층 계급이 많다는 것. 자신의 소수성에 대한 분노를 자기보다 못한 소수자들에게 해소하는 전형적인 사이클.

7. 유스호스텔은 참 신기한 곳인게, 그냥 혼자 구경하다 올 생각으로 갔던 여행에서 쌩판 처음보는 스물댓 살의 백인 애들 세 명과 친구가 되어 3일 동안 같이 돌아다니게 만들어주었다. 미시건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는 애들인데, 대학원생이 아닌 백인들과 이렇게 가깝게 지내보긴 또 처음이군.

아래는 사진. 재즈페스티벌은 동영상만 찍었는데 어쩔지 생각중.

루이암스트롱 공항 벽면에 부착된 그림. 저것 말고도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그림도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음.


미시시피강.


프렌치쿼터에 있는 건물들이 유명한데 찍고 나서보니 대부분 관광객들을 의식한 인위적인 건물들이 많았음. 이건 좀 다른 느낌.

줄 서서 들어가야 했던 유명한 재즈 클럽 "Preservation Hall"의 전속 밴드 공연.

2010년 4월 30일 금요일

전쟁책동과 사법질서파괴, 그 다음은?

"결연한 복수"를 외치는 정치인들은 후진 기어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 선동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고, 선동으로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이적" 혐의를 씌웠다. 이제 후퇴나 방향 선회는 지지세력을 깎아먹고 반대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UN안보리에 회부를 하든, 자기들 말마따나 "경제에 타격 없는 국지전"을 벌이든 "복수"는 이제 그들의 정치적 생명이 되었다. 설령 그 복수의 상대가 실제 사건의 주모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이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라도 그 사실은 감추고 또 폐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답은 하나 밖에 없다. 복수! 복수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복수!

"정치의 자유"를 외치는 정치인들에게도 후진 기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 정보의 무단 공개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추궁과 법적 강제에 따른 "파산 공포"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소신"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설령 위헌 행위임이 판명 나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더라도 지지세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끝까지 투쟁하다 산화하는 것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다. 이제 적은 법치질서 그 자체에 있다. 법을 쳐서 치의 무한한 자유를 얻겠다는 그들의 고귀한 소신 앞에 남은 정답 역시 하나다. 파괴! 파괴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도 파괴!

문제는 그들의 복수와 파괴가 지난 세기와는 달리 어떤 "결연한 질서"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부흥을 통한 공공의 발전이라는 신화는 땅바닥에 던져진지 오래이고, "애국"이 그저 어떤 공고한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한 이해타산에서 나온 구호임은 이제 어지간한 필부도 아는 세상이다. 복수와 파괴의 구호 아래 모인 지지자들도 숭고한 무엇인가를 지키고자 내 한몸 희생하려는 진지하고 융통성 없는 꼰대들이 아니라, 그 구호를 통해 내 잇속 침범하는 자들을 속아내자는 잔머리 따라 움직이는 뜨내기들일 뿐이다. 책임질 이 없는 구호는 공허하게 떠올랐지만, 후진기어도 브레이크도 없이 한껏 팽창할 뿐이고, 이제 이것이 어떻게 터질 것인지 우울하게 지켜볼 일이다.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종강

페이퍼 하나 남겨 두고 오늘 드디어 종강했다. 극장에서 영화본 것은 《아바타》가 마지막이었던 듯. 몰아서 《인생은 아름다워》 두 회분을 보고 몇 사람과 통화를 했다. 한국 시각으로 어제 이형표 감독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지금도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다. "멋스럽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노신사였고, 또 여기서 말동무를 해드리고 있는...이라기보다는 거의 일방적인 말 세례를 받아드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돌아가면 꼭 찾아뵙고 멀리 떨어져 만나기 힘든 두 노인의 다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품어왔던 분인데... 참 기분이 그렇다. 요즘 추세로 따져도 오래 사신 편이고 또 긴 지병 같은 것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애써 슬픔을 덜어보려하는 것도 같다만, 내가 그 연세가 된다고 해도 사실 "오래 살아서 미련 없는 생" 따위란 말도 안되는 헛소리일 것임을 알기 때문에 계속 먹먹한 상태다. 못 들은 이야기, 1차 자료 없는 그 자체로 유일한 사료라 할, 기록 못한 얘기들도 많은데 한 '역사'가 그냥 통째로 사라져버린 느낌도 들고... 오랜 친구가 긴 고통 없이 떠났다는 소식에 애써 위안을 찾으려 드는, 이곳에 남은 비슷한 나이의 노인도 눈에 밟힌다. 다음 주는 바쁘지만 그래도 또 찾아 뵈려고 한다.

2010년 4월 16일 금요일

문근영

요새 연기 변신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
드라마 보기를 돌 같이 하여 《인생은 아름다워》만 보기로 다짐한 터라 전체를 확인하지는 못하고;;
돌아다니는 플래시 영상을 몇 개 봤다.
음.. 뭐.. 느낌이 나쁘진 않은데, 뭐랄까.. 좀 많이 낯익다 했더니.....

우리 크리스티나님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이 좀 강하게 드는데?!
귀염상 있는 얼굴을 성숙(?)하고 도발(??)적으로 보이려면 아무래도 우리 티나님만한 롤모델이 없을 것 같기도.
아님 말고 ㅋ

2010년 4월 8일 목요일

2003년 여름

여기 연구실 라운지(?)의 한쪽 벽면은 꽤 재미있는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책장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연구자들이 1년 혹은 1년 반씩 머무르면서 보던 책을 돌아갈 때 기증하고 간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취향도 각양각색이고 연속간행물도 다섯 권 넘게 있는 경우가 잘 없다. 오늘 혼자 밤새다 쉬는 중에 한권 눈에 들어왔는데 『당대비평』 2003년 여름호다. 다른 곳에서 봤으면 그냥 지나갔을 테지만 여기 있는 단 한권의 당대비평, 그리고 그해 여름에 여기를 지나쳐갔을 어느 연구자가 봤던 책이라 하니 호기심이 생겨 들여다보게 되었다.
시작한지 얼마 안된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진 특집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 당시에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 김대중'의 10년이 '잃어버린' 기간이었다는 것인데, 아마 그 영감들 입장에서는 5년 더 지나고 보니 앞쪽 5년은 잃어버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렇다고 똑 같은 표현을 그대로 당겨쓰다니 참으로 실용적이로고! 뭐 암튼 이미 그때부터 노무현의 실책들은 드러나고 있는 중이었고, 윤평중이 "지배세력의 교체"를 위한 싸움이라고 봤던 그 정부의 초기 행보들은 그보다는 개뿔 "헤쳐모여"의 판타지와 그 환각 이면에서의 지능적인 지배계급 재결집에 판을 깔아주고 있었다. 당시의 논자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얼마 전에 본 아룬다티 로이의 글도 있었는데, 경악스러운 세계의 상태에 대한 고발의 어조가 주를 이루는 그녀의 논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고발해야할 내용이 7년이 지난 지금 더 많이 생겨난 것이 차이랄까. 오바마의 세계도 911 이후 부시의 세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으니.
한국에 왔던 요한 갈퉁과 마이클 하트의 대담도 있었고(각기 따로), 그 당시 노동에 관한 꽤 신선한 담론이었던 "노동사회"에 대해 홀거 하이데가 특별 기고를 하기도 했네. 독자 투고란에는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어느 낯익은 이름이 있었고, 문화비평란에는 당시로서는 가장 뜨거운 영화였을 《살인의 추억》에 대한 비평이 있었다.
그때 난 뭘 했나.. 생각해봤다. 아마 가장 혼란스러운(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시기였던 것 같다. 여러 사람들과 '새로운' 시도들을 했던 것도 같고,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어리버리 했던 것도 같고. 당대비평의 영화평론을 보니, 같이 세미나 하던 후배들과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나왔더니 한 여자 후배가 "보는 내내 무서웠다"고 했던 것도 기억나네.
시간 참 빨리 간다.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이 희뿌옇게 보이던 것도 어제 같은데, 그러고도 반년 뒤에 있었던 일들이 이렇게 회고의 대상이 되다니. 그때 당대비평을 봤던 저 연구자는 지금 무슨 연구를 하고 있을까.

2010년 4월 5일 월요일

"온 식구가 모여 보는 가족드라마"라는 프레임

이미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가 개봉한지도 15년이 넘어가는 시점인지라 영화나 미드 좀 본다는 사람들은 요즘 《인생은 아름다워》가 보여주는 동성애 묘사를 구닥다리로 여기기도 한다. 뭐 좀 낡긴 했어도 흥미로운건 그 '구닥다리' 조차도 "온 가족"이 보는 "주말연속극"이라는 프레임에 들어오면 무척 급진적인 내러티브가 된다는 점이다.

[서울신문] 인생은 아름다워, 동성애 장면에 시청자 '발끈'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궁금한 것은, 정말 저 시간대에 TV 앞에는 온 식구가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냐는 점이다. 뭐 그런 집들도 있겠지만 사실 대학생만 되어도 애들은 주말 저녁에 데이트하거나 술마시러 나가놀기 십상이고, 초중고딩들은 주말 뭐 그딴게 어디있으며, 직장인들도 토요일 반나절 퍼질러 자다가 토요일 저녁쯤에야 약속 잡아 나가놀지 않냔 말이다. 어린 애들 딸린 30대 핵가족들도 있겠다만, 30대인 내 입장에서 볼 때 그 사람들 주말 연속극 열심히 안본다. 보더라도 김수현 할머니 드라마는 자기들 코드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다반사다. 결국 그 시간에 열심히 '주말연속극'을 보는 사람들은 50~60줄을 넘긴 '어른'들, 애들이 나가놀아서 외로운, 그러나 본인들 만큼은 주말 저녁에 집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그 어르신들 아닌가? 그냥 자기들이 보기 싫은 낯선 소재인거지, 애들 교육이고 나발이고 핑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노인 아닌 노인네들(이제 60대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라지)의 페다고지로 김수현은 여전히 급진적인 텍스트다.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주적은 여기에 있다

초계함 침몰에 북한의 공격인 것 같다는 전시(戰時) 보도를 했던 SBS와 총질하는 과거 자료화면을 이번 사건 보도에 교묘히 붙여서 전시 생중계(!)를 감행했던 MBC는 바로 이 놈들을 위해 이적질을 한 것이다(KBS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이 놈들이야 말로 진정한 주적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놈들이 겨눈 총구 앞에 노출되어 있다. 당장 무장해제시키고 목을 쳐야 할 놈들. 물론 저 놈들은 적진의 최하층 똘마니들에 불과하다. 그 꼭대기에 어떤 놈들이 있을지는 알아서들 판단하시길. 참고로 얼마 전에 화려한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약쟁이 아저씨는 당연히 포함된다.

[천안함] 해군2함대 해명 소극적... '실종가족에 총 겨눠' 말썽

그리고 SBS와 수장 바뀐 MBC, 김모 기자 등의 오보 말썽은 딱히 프로파간다적 의도를 지닌 의도적 오보 같진 않다. 원래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욕망하면 환청도 들리고 환각도 보이고 하는거다. 북한이 총질 한번 해주길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 생각보다 많다.

2010년 3월 21일 일요일

2010년 2월 20일 토요일

생각해보니 한국의 콘서트 문화

한국 관중들이 너무나 열정적이라 메탈리카도 감동하고 오아시스의 콧대도 살짝 돌아갔다는 얘기는 이제 질릴 만큼 자주 오가는 얘기다. 철수 형님 방송에 내한 뮤지션이 출연하면 한국 관중들 얘기가 빠짐없이 나오고, 내한했던 뮤지션들이 떠나면서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는 기사도 종종 볼 수 있다. 그 관중의 한 명으로서 묘한 '자부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여기서 잠깐 머무르는 동안 갈 수 있는 공연은 가능한 한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출석을 하다가보니 문득 이유를 알 것 같다. 재작년 익스트림 내한공연을 멜론 악스홀에서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공연장의 규모가 이곳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라이브 공연장들 규모였다. 좀 작은 편이고, 플로어석과 2층의 좌석으로 되어 있는 공연장. 집중도는 높지만 규모가 큰 게 아니다 보니 약간은 급이 낮다는 느낌도 드는 그런 공연장이었다. 그때 플로어에서 (나를 비롯한) 우리 관객들은 방방 뛰고 소리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감동한 게리가 자기들이 멍청해서 한국에 너무 늦게왔다고 말했더랬지. 그런데 여기는 그런 규모의 공연장이 한 도시 도심부에 최소 대여섯 개는 되는 것 같고 그 많은 극장들이 거의 매일마다 공연을 돌리고 있다. 그런 도시들이 주마다 하나씩은 있을테니 대충 50개 도시일테고, 각 도시마다 지역 내에서의 인지도를 갖춘 밴드들이 드글드글하겠지. 서로 돌려가며 공연해도 1년 동안 밴드 밥벌이는 대충 해결 될 것이다. 이렇게 마켓이 크니 한 공연장당 한달에 한번 정도는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뮤지션들이 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도 덜 유명한 밴드들과 다를 바 없이 매년 투어를 하는 것이고, 뉴욕에서 공연하면 가까운 DC나 보스턴에서도 덤으로 할 수 있는거고, 도시마다 있는 공연장들이 공장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으니 장소섭외도 훨신 간단할테고. 즉 멜론 악스홀 같은 작은 규모의 극장에서 소닉 유스나 레니 크래비츠나 예스 같은 밴드들이 공연하는 것은 다반사인 것이며, 대충 2~3년에 한번씩은 그 밴드들이 다시 같은 도시를 찾을 확률도 높은 것이다. 그래서 여기 관중들은 딱히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처럼 익스트림이 결성 19년만에 왔다고 목쉬도록 소리지르며 방방거릴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나. 갑자기 처량해진다. 선생님이 쳐다보지 않아서 한쪽 구석에서 손들고 소리지르며 저 좀 봐달라고 애쓰는 아이가 된 것 같달까나. 선생님이 흡족하게 말한다. "어이구 우리 한국이는 목소리도 우렁차네!"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진지희라는 배우

표현력의 수준이 그저 '악동 캐릭터'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대본이나 감독의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 수준도 넘어섰다. 하이킥의 어제 에피에서 확연하게 느꼈다.


저 장면에서 이 배우의 웃는 얼굴, 그리고 지칠줄 모르고 "끝까지" 가고야 마는 천진한 악랄함의 표현이 떠오르게 한 것은 지상의 배우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껏 배우 사람의 '연기'로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어떤 판타스틱한 세계의 피조물들이었다. 가령 준지 상이 만들었던 이 캐릭터..

끝까지 가면서도 멈춤이 없고 반성의 껀덕지도 없다는 점에서 이 캐릭터의 한 면모가 떠올랐다면, 또 다른 측면에서 떠오른 것은 좀 더 고전적인 아래의 캐릭터다.
뭔가 다 알고 있지만 능글 맞게 그걸 즐기는 우월한 존재!

2010년 2월 15일 월요일

교수회의 총기난사 사건

사실 생각해보면 총기소지가 허용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공포'는 이곳에 오기 전이 더 컸던 것 같다. 정작 여기서는 일상에 도처한 위험물로서의 '총'에 대한 곤두선 신경이 더 무뎌졌다고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놈의 나라는 입국하는 비행기 출발 전부터 액체반입이 안된다느니 커터칼도 못가지고 들어간다느니 하고, 입국수속 때는 알몸투시기까지 도입한다느니(다행히 나는 그 전에 입국했다만) 하면서 온갖 감시와 단속을 하면서도, 일단 들어와서 보면 그딴 것 다 딴 세계 얘기다. 지금도 도서관 한켠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 건물 안에 어느 누가 가슴팍에 총을 들고 있을지 알 수 없고, 그런 것에 대한 예방적 단속도 없다. 하긴 그런 예방적 단속이 일상 곳곳에 있다면 그야말로 판옵티콘이겠지. 지금 미국사회는 총기상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과, 그들의 입김을 막을 힘도 막을 의지도 없지만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만큼은 못견디는 리버럴들이 만들어놓은 묘한 균형 속에 있는 것이다. 총을 지닐 자유와, 총을 지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 자유.
그런 '자유'가 만들어놓은 기묘한 마취 속에 살아왔는지, 나 역시 '공포'의 대상이던 총에 대한 관심을 잃은지 꽤 되었다.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딴 생물학계에 꽤 알려진 조교수가 종신자격을 얻지 못해 교수회의에서 총기를 난사했다"는 대학원 사회에서 꽤 낯익은 직책과 상황이 '사건'의 정황으로 알려지고서야 다시 내 바로 옆에 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작년에 입국하고 초반에는 유학생들로부터 들었던 몇몇 사건들(단지 "거기 있었다"는 이유로 학교 앞 거리에서 총에 맞아 즉사한 아시아계 여학생의 이야기 같은) 때문에 한 동안은 밤에 나돌아다니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일상 속에서 재수없으면 마주칠 '교통사고' 같은 확률의 문제로 치부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상태가 총기상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정신상태인 것도 같다.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2월 9일, 두 가지 회상

1.
학부 때 우리 과 NL들의 필독서, 아니 필수 입문서가 있었다. 아마 우리 과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교재였을 텐데, 당시 나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 책의 저자를 매우 싫어했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후배들 앞에서 비판을 해댔으니 꽤나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하겠다. 뭐 지금에 와서도 그 사람의 학문적 스펙트럼과 논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마찬가지긴 하지만 소급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지. ㅋ 아무튼 어쩌다보니 그 문제의 학자가 초청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돌아가면서 인사하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만. 초청자가 초청자다보니만큼 식사 중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한 이야기로 초점이 모아졌다. 북한에 정통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독일 외교부 주재원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2년 전에 자기가 평양에 갔을 때 겪었던 에피소드를 끝도 없이 쏟아냈다. 나의 기억 때문에 묘한 기분으로 시작했던 식사는 그 끝없는 대화를 통해 또 다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끝났다. 나름 미국 수정주의 역사학의 대가가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도 북한은 기이한 무용담을 불러일으키는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곳으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었다. 하긴 수정주의 역사학이라는 것도 결국 현실주의 정치꾼들과 정치학 장사꾼들하고 대립각을 세울 때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일 뿐, 기본적인 로직이나 전제에 있어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거울쌍이 아닌가. '구국의 횃불'들이 이 장면을 봤어야 하는데.

2.
중고딩 때 나의 취미(?)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던 조그만 음반 가게의 카세트 테입 선반을 뒤지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음반 산업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 성시완 같은 사람들의 비평을 읽으면 한국은 정말 아트락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곳임에 분명한데도, 간혹가다가 전혀 의외의 앨범들이 라이센스 테입으로 음반가게 구석에 박혀 있곤했다는 점이다. 《접속》으로 뜨기 전의 Velvet Underground & Nico 바나나 앨범이나 Gentle Giant, Klaatu, 심지어 Triumvirat의 앨범도 먼지가 잔뜩 묻은 채로 동네 음반가게 카세트 테입 선반에서 내가 찾았던 것들이다. 그때 아트락의 입문반으로 정말 테입 늘어지게 들었던 것이 Yes의 《Fragile》이다. Yes는 Pink Floyd보다 좀 낡은 느낌, 그래도 Camel 보다는 뭔가 세련된 느낌, 뭐 그런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버스 타고 지나는 길목에서 봐둔 음반 가게에서 '발굴'해야 했던 먼지 속의 그 앨범들은 내게 '현재형'의 의미는 아니었다. 나는 주변 아이들이 모르는 옛날의 가치 있는 음악들을 스스로 찾아내서 향유하는 콜렉터 쯤으로 자기만족을 했던 것 같고, 그건 분명 스노비즘이었다. 슬래시 메탈 마스터 했으니 이제 프로그레시브를 정복해볼까, 모던 재즈를 섭렵했으니 이제 한 단계 높은 프리 재즈다, 뭐 이딴 식의 사고를 했던 것이다. 그게 재수없고 말고를 떠나서 근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난 대략 군 제대를 전후해서 음악에 관한 한 그런 새로운 영역을 정복하려는 노력을 아예 접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내 음악적 취향의 바운더리는 결국 그 중고딩 때의 스노비즘이 만든 것 딱 그만큼이다.
별 영양가 없는 얘기를 줄줄 늘어놓은 것은 S군의 분통 터뜨리는 불만이 무서워서인데, 그래도 뭐 Greenday에 Muse까지 직접 봤다니 더 이상 염장이라고는 느끼지 말아주기 바란다. 그래, 나 오늘 잔혹한 일정상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결국 Yes 콘서트를 다녀왔다. 도저히 내 유년을 지배했던 저 신화적인 밴드를 직접 안보고는 못배기겠더라. 벌써 보컬 존 앤더슨 할아버지는 병환으로 은퇴까지 했는데 언제 영영 은퇴하실지 모르는 노인네들 아닌가. 이건 하늘이 점지한 운명적 만남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봤다.
위의 저 식사를 끝마치니 대략 8시 반. 공연은 8시부터 시작. 택시 타고 달려서 가니 그래도 오프닝 밴드가 있었던 것인지 이제 막 시작한 티가 나더라. 새로 바뀐 보컬에 대한 걱정이 좀 있었는데, 귀를 의심케 했다. 66년생이라는 이 '젊은' 보컬은 거의 모창이라 해야할 정도로 오리지널을 잘 카피하고 있었다. 음.. "그럼 프레디 머큐리도 모창으로 대체하고 Queen 재결성을 하면 안되나?" 따위의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가 스스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 어떤 밴드보다 보컬의 음색이 아주 독특한 밴드인데 어디서 잘도 이런 클론을 찾아냈구나. 히트곡도 많으신 이 분들, 관객석의 40~50대 어르신들이 다들 따라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스티브 하우의 쌍기타 신공! 마치 주윤발의 쌍권총 신공을 직접 본 것 같달까 ㅋㅋ 〈Roundabout〉 10분 버전도 좋았다. 이 옹들의 젊은 시절은 본 적도 없지만 살아남아서 이런 신공들을 펼쳐보여주시니 감읍할 따름이다. 다시 한번 산울림이 안타깝다는 생각 잠깐.


Steve Howe 노인의 쌍기타 신공

덧. 대학 시절의 뻘짓 에피소드 하나 더. 새내기 때 학생회 선배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던 친구놈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도 락을 엄청 좋아했다. 한번은 그 녀석이 "○○아, 그래도 얼터너티브는 기존 락에 대해 저항적인 음악인데 아트락은 좀 아니지 않냐? 보수적인 것 같은데"라고 물었고, 내 대답은 "아냐 임마, 아트락을 다른 말로 프로그레시브락이라고 하잖아. 몰라서 그렇지 이게 얼마나 진보적인데"였다. 우문에 우답이다. 아 얼굴 화끈거려.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나는 네가 도서관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그래 잤다. ㅡㅡ;
한참 자고 눈을 떴더니 누군가 이런 스케치를 놓고 사라졌더라.
저런 정교한 스케치를 하다니 그 사람도 진득히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닌 듯.

덧. 그러고보니 오늘로 이제 돌아갈 날이 딱 1년 남았군.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지금 돌아가는 꼬락서니

독□영화전□관과 영□미디□센터가 수구들의 손에 접수되었음을 규탄하는 트윗과 한명숙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규탄하는 유시민의 트윗 포워딩을 동일인에게 1시간 간격으로 받았다. 그 사람은 두 '탄압'의 발원지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 현상적으로야 그렇지.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의 세계관에서는 본질적으로도 그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독□영화'라는 것도 유시민이 말하는 수준의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내에서 정부 지원도 받고 자본의 투자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나야 하는 '시민'적인 가치의 총체라는 그런 세계관. 그래서 결국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것은 도로 '그 민주주의'인 것이고. 그걸 넘어서는 민주주의는? 안타깝지만 '고진감래' 등급을 받고 '전□관'에도 걸기 어려운 냉혹한 시장 논리 앞에 제물로 던져져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저 사람 말고도 독□영화판의 다수라면, 나는 명박이와 그 따라지들의 지금 행동을 비판할 생각이 없다. 유시민류의 '그 민주주의'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던 기형식물 같은 '독□영화'라는 이름의 뮤턴트는 어쩌면 정초신의 영화보다 더 해악이 큰 것이었을 테다. 당장 '독□영화인'인 저 트위터가 유시민과 한명숙을 위해 발로 뛰는 것을 보라. 그런 면에서 명박이는 단기적 지향으로는 지능적이지만 장기적 지향으로는 유시민보다 멍청하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선덕여왕》에서 《추노》로

선덕의 템포에서 벗어나와 진입하기엔 살짝 적응 안되는 부분이 있었으나 무사히 착륙. 《환상의 커플》과 《내조의 여왕》의 찌질남에서 비극적인 영웅으로 거듭난 오지호의 무게감은 나쁘지 않은데, 그 옆에서 대본 읽는 이다해의 소격효과에 손발이 오글오글. 이요원이 진흙탕에 구르고 똥물에 세수했던 것은 상당 부분 고미실에게 밀려 여왕 이름값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손 치더라도, 웃통 벗은 훈남들 속의 히로인이면 적어도 그 반만큼은 몸을 던져야 하는데 이건 뭐 연기도 못하고 망가지지도 못하니 시트콤이 따로 없다. 선덕에서도 오글남 김유신이 한 역할 했다만, 적어도 그 오글거림은 배역에 대한 충실함에서 나온 것이니 배우 탓은 아니지.
그건 그렇고 《추노》가 하층계급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이라는 해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전히 이 드라마를 끌어가는 중심서사는 왕조와 그 속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있으니. 아직 《다모》를 넘지는 못했다. 공형진이 어떻게 되나 봐야겠지.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Mount Vernon, 인종주의 국가의 원풍경

어제 어떤 선생님의 부탁으로 찍사 노릇을 하기 위해 조지 워싱턴이 죽을 때까지 살던 집인 Mount Vernon과 케네디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 1일 여행을 다녀왔다. 마틴 루터 킹 데이라 해서 휴일이라 마침 요즘 출근하는 곳이 쉬는 날이기도 했고. 가기 전에는 조지 워싱턴 집이든 뭐든 별 생각이 없었다. 자기들 초대 대통령 기리는게 얘네들한테야 한국에서 단군 기리는 거랑 비슷한 일일거란 정도의 생각이 있었을 뿐.

그런데 그런 준비 안된 내게 정통으로 한방 먹이는 계기가 있었으니.. "We fight to be free"라는 영화였다. 마운트 버넌은 구조상 Ford사가 만든 오리엔테이션관을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는데, 워싱턴 생가 미니어처라든가 각종 그림, 도표 등을 지나면 약 200석 규모의 극장이 나온다. 포드가 돈을 대서 그런지 극장이 때깔부터 달랐는데, 안내하는 백인 아주머니가 아주 자랑스럽게 이 fabulous한 영화를 절대 놓치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그래 뭐 시간도 넉넉하겠다, 전공도 전공이겠다 한번 보고 가자 생각하고 자리를 잡았다. 단체 관람 온 것으로 보이는 애들이 가득 자리를 채우고 있어서인지 살짝 어수선하다고 둘러보는 와중에 영화가 시작한다. 오우 포드가 돈을 대서 그런지 교육영화 주제에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전투병 의상 하며 상류층 여성들의 화려한 코스튬 하며. 워싱턴과 훗날 영부인이 될 마사가 처음 만나는 장면도 무슨 상층 가문의 파티 같은 곳인 듯 했다. "인디안 죽여본 적 있어요?" 뭐라? 마사 집안의 어린애 하나가 워싱턴에게 당돌하게 질문을 하네. 워싱턴 머뭇거리고 마사가 애한테 뭐라고 한다. 아하 나름 그 당시 분위기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인가보다 생각했다.

사실 전쟁 얘기가 드문드문 나올 때도 뭐 뻔한 영국영화식 전쟁 묘사가 나올거라 안이하게 생각했다. Revolutionary War라니 당연히 영국군과의 전투가 나올거라 생각했고. 그런데 갑자기 매복해 있던 우르크하이와 오크족이 등장한다. 그 흔한 깃털 모자도 안썼다. 코와 귀에 온갖 피어싱을 한 독기서린 눈을 가진 그들. 아놔, 진짜 인디언과 전투가 나올줄이야. 이건 반세기 전에 수정된 진부한 코드 아니더냐. ㅡㅡ; 감히 사령관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짐승 같은 것들의 공격에 우리 워싱턴 장군의 눈이 이글거린다. 세상에, 그 '짐승'들과의 전투가 이 영화가 묘사하는 레볼루셔너리한 전쟁의 전부다. "이 땅은 우리 땅이니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며 식민군대에 대항할 것을 선동하면서 정작 살육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 땅 숲속에 숨어 사는 우르크하이들이다. 하긴 같은 백인들끼리 싸우며 피 흘리는 모습보다야, 음침한 인상에 괴상한 장식을 한 숲속의 우르크하이들과 싸우는게 더 스펙터클하겠지.

영화가 놀라운 것이 아니라, 2010년 정초에 그런 영화를 자랑스럽게 교육용이랍시고 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불이 켜지고 문득 단체 관람온 애들을 다시 둘러보니 알 만하다. 스물에서 서른 남짓 되는 애들 중에 흑인 하나, 아시아계 하나, 나머지는 모두 백인들이다. 어디 급이 좀 높은 사립 고등학교에서 왔나보지. 마틴 루터 킹의 날에 저런 영화를 보는 그 흑인 아이는 뭘 생각하고 있을까? 마운트 버넌 투어 코스 막바지에 워싱턴 묘비가 있고, 그 옆으로 워싱턴 가문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들을 기리는 비석으로 가는 길이 있다. 초딩들을 인솔한 교사가 워싱턴을 기리는 의식을 진행한다. 옆길로는 가지 않는다. 그게 코스의 마지막이다.

《아바타》로 수정주의 사관을 백날 향유하면 뭐하나. 이 국가의 시원이 되는 장소는 여전히 누구와 싸워 누구로부터 쟁취한 나라인지 매우 솔직하고 당당하게 기념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아바타》의 남자 주인공과 워싱턴이 참 닮았다. 10개의 방에 끊임 없이 손님을 들이며 영부인의 모범을 보였다는 마사와 네이리티는 또 왜 저렇게 닮았을까.

문제의 영화 "We fight to be free"

Mount Vernon Ford Orientation Center

워싱턴이 살던 집
워싱턴 묘역 앞에서 꼬맹이들에게 묵념을 시키는 선생들

아무도 가지 않는 노예기념비 앞

오랜만에 King Diamond



도대체 미국에는 교민, 유학생 할 것 없이 왜 이렇게 기독교인이 많은 것일까?
잠시 머무르는 하숙집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이 직접 느껴지는지" 아닌지에 대해 토론이 붙었다. 어쩌라고 ㅡㅡ;;;;;
아놔 이 집은 왜 방음도 이렇게 안되는 것인지!

그래서 오랜만에 King Diamond를 듣는 중. 볼륨 최대업으로 해놓고 있어도 노트북이라 한계가 있다.
저 사람들은 눈치도 없나 ㅠ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한국사회를 한국 사회 바깥에서 비판한다는 행위는 묘한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봉준호와 박찬욱의 영화를 인용하면서 "한국의 판타스틱한 발전"을 말하는 이들에게,
이명박을 말하고 박정희를 말하면서 니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원래 이런 나라야, 지금도 이렇게 어이 없어 라고,
봉준호와 박찬욱 영화의 구린 컨텍스트와 김대중,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말하면서 얘네도 이런 애들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 내 내면과 그들의 시선 앞에서 만드는 이상하게 불쾌한 긴장감이 있다.

그 불쾌한 감정의 정체를 객관화해서 대면해야 좀 더 솔직하게 비판이라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박家와 이家

요즘 관련된 프로젝트가 있어서 박통 때 건설에 대한 자료를 계속 보는 중인데, 이걸 보면서 느끼는 것은 명박이의 박통 코스프레가 단지 표층적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박가가 고속도로를 했으니 이가가 4대강을 한다"는 도식은 너무 단순하다는 얘기. 어찌 보면 이가에 대한 지식인+a 집단의 태도는 뼛속 깊은 지적 우월감 때문에 그자의 행태를 그저 코믹하고 무식한 흉내내기라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요즘 60년대 신문자료를 보면서 느끼는건 그저 흉내내기라고 하기에는 여론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정부 기구가 선전하는 방식이 너무나 닮았다는 점이다. 고속도로도 4대강 못지않게 반대여론이 (그놈들 입장에선) 문제였던 것 같은데, 대처하는 방식이 아주 판박이다. 이렇게 닮는다는건 흉내 낼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 박가를 그저 멋진 오빠로 생각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란 말이다. 괴벨스 수준의 브레인집단이 매일 아침 전략회의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박통-대갈통-물통의 오랜 노하우를 전수하는 시스템이 있는 것인지, 쉽게 볼 놈들이 아니다. 프로파간다 연구가 별로 된 것도 없는데, 어쩌면 저렇게 60년대 여론전의 정수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거참..
재밌는건 그때 민주당이나 지금 민주당이나 참 무능하고 지리멸렬하다는 것. 이것도 전수 받았나?

포기한 콘서트들

먼저 Yes. 이 노인네들이 아직까지 라이브 투어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감격인데, 하필 같은 날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못가게 되었다. 후회하게 되겠지?

다음으로 Jeff Beck과 Eric Clapton의 조인트 콘서트. 이건 비싸서 도저히 못보겠다. 20만원 가까이 내고도 3층에서 봐야 한다니 말 다했지. 아놔 근데 Yes랑 이 노인네들이랑 네임밸류가 그렇게 많이 차이 나나?

지금 고민 중인 것은 U2공연인데, 원 예매처에서 55달러씩 하던 것은 이미 매진이고 이걸 되파는 사이트들이 95달러씩 받고 있다. 플로어석이라서 일찍 가서 버팅기면 좋은 자리 잡을 수 있긴 한데, 그것도 삭신이 쑤시는 일인지라.. 10만원 가까이 주고 그 짓을 할 생각하니 왜 사서 고생하나 싶고.

암만 생각해도 나는 저 노친네들의 진정한 팬이 아닌가보다.

2010년 1월 1일 금요일

2010년의 시작은 이 분과 함께!



아주 걸쭉하게 보낼 예정.

이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몇 안되는 분들께서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보람 있는 한 해 열어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