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5일 월요일

교수회의 총기난사 사건

사실 생각해보면 총기소지가 허용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공포'는 이곳에 오기 전이 더 컸던 것 같다. 정작 여기서는 일상에 도처한 위험물로서의 '총'에 대한 곤두선 신경이 더 무뎌졌다고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놈의 나라는 입국하는 비행기 출발 전부터 액체반입이 안된다느니 커터칼도 못가지고 들어간다느니 하고, 입국수속 때는 알몸투시기까지 도입한다느니(다행히 나는 그 전에 입국했다만) 하면서 온갖 감시와 단속을 하면서도, 일단 들어와서 보면 그딴 것 다 딴 세계 얘기다. 지금도 도서관 한켠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 건물 안에 어느 누가 가슴팍에 총을 들고 있을지 알 수 없고, 그런 것에 대한 예방적 단속도 없다. 하긴 그런 예방적 단속이 일상 곳곳에 있다면 그야말로 판옵티콘이겠지. 지금 미국사회는 총기상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과, 그들의 입김을 막을 힘도 막을 의지도 없지만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만큼은 못견디는 리버럴들이 만들어놓은 묘한 균형 속에 있는 것이다. 총을 지닐 자유와, 총을 지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 자유.
그런 '자유'가 만들어놓은 기묘한 마취 속에 살아왔는지, 나 역시 '공포'의 대상이던 총에 대한 관심을 잃은지 꽤 되었다.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딴 생물학계에 꽤 알려진 조교수가 종신자격을 얻지 못해 교수회의에서 총기를 난사했다"는 대학원 사회에서 꽤 낯익은 직책과 상황이 '사건'의 정황으로 알려지고서야 다시 내 바로 옆에 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작년에 입국하고 초반에는 유학생들로부터 들었던 몇몇 사건들(단지 "거기 있었다"는 이유로 학교 앞 거리에서 총에 맞아 즉사한 아시아계 여학생의 이야기 같은) 때문에 한 동안은 밤에 나돌아다니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일상 속에서 재수없으면 마주칠 '교통사고' 같은 확률의 문제로 치부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상태가 총기상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정신상태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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