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0일 수요일

2월 9일, 두 가지 회상

1.
학부 때 우리 과 NL들의 필독서, 아니 필수 입문서가 있었다. 아마 우리 과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교재였을 텐데, 당시 나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 책의 저자를 매우 싫어했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후배들 앞에서 비판을 해댔으니 꽤나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하겠다. 뭐 지금에 와서도 그 사람의 학문적 스펙트럼과 논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마찬가지긴 하지만 소급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지. ㅋ 아무튼 어쩌다보니 그 문제의 학자가 초청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돌아가면서 인사하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만. 초청자가 초청자다보니만큼 식사 중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한 이야기로 초점이 모아졌다. 북한에 정통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독일 외교부 주재원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2년 전에 자기가 평양에 갔을 때 겪었던 에피소드를 끝도 없이 쏟아냈다. 나의 기억 때문에 묘한 기분으로 시작했던 식사는 그 끝없는 대화를 통해 또 다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끝났다. 나름 미국 수정주의 역사학의 대가가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도 북한은 기이한 무용담을 불러일으키는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곳으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었다. 하긴 수정주의 역사학이라는 것도 결국 현실주의 정치꾼들과 정치학 장사꾼들하고 대립각을 세울 때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일 뿐, 기본적인 로직이나 전제에 있어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거울쌍이 아닌가. '구국의 횃불'들이 이 장면을 봤어야 하는데.

2.
중고딩 때 나의 취미(?)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던 조그만 음반 가게의 카세트 테입 선반을 뒤지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 음반 산업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 성시완 같은 사람들의 비평을 읽으면 한국은 정말 아트락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곳임에 분명한데도, 간혹가다가 전혀 의외의 앨범들이 라이센스 테입으로 음반가게 구석에 박혀 있곤했다는 점이다. 《접속》으로 뜨기 전의 Velvet Underground & Nico 바나나 앨범이나 Gentle Giant, Klaatu, 심지어 Triumvirat의 앨범도 먼지가 잔뜩 묻은 채로 동네 음반가게 카세트 테입 선반에서 내가 찾았던 것들이다. 그때 아트락의 입문반으로 정말 테입 늘어지게 들었던 것이 Yes의 《Fragile》이다. Yes는 Pink Floyd보다 좀 낡은 느낌, 그래도 Camel 보다는 뭔가 세련된 느낌, 뭐 그런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버스 타고 지나는 길목에서 봐둔 음반 가게에서 '발굴'해야 했던 먼지 속의 그 앨범들은 내게 '현재형'의 의미는 아니었다. 나는 주변 아이들이 모르는 옛날의 가치 있는 음악들을 스스로 찾아내서 향유하는 콜렉터 쯤으로 자기만족을 했던 것 같고, 그건 분명 스노비즘이었다. 슬래시 메탈 마스터 했으니 이제 프로그레시브를 정복해볼까, 모던 재즈를 섭렵했으니 이제 한 단계 높은 프리 재즈다, 뭐 이딴 식의 사고를 했던 것이다. 그게 재수없고 말고를 떠나서 근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난 대략 군 제대를 전후해서 음악에 관한 한 그런 새로운 영역을 정복하려는 노력을 아예 접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내 음악적 취향의 바운더리는 결국 그 중고딩 때의 스노비즘이 만든 것 딱 그만큼이다.
별 영양가 없는 얘기를 줄줄 늘어놓은 것은 S군의 분통 터뜨리는 불만이 무서워서인데, 그래도 뭐 Greenday에 Muse까지 직접 봤다니 더 이상 염장이라고는 느끼지 말아주기 바란다. 그래, 나 오늘 잔혹한 일정상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결국 Yes 콘서트를 다녀왔다. 도저히 내 유년을 지배했던 저 신화적인 밴드를 직접 안보고는 못배기겠더라. 벌써 보컬 존 앤더슨 할아버지는 병환으로 은퇴까지 했는데 언제 영영 은퇴하실지 모르는 노인네들 아닌가. 이건 하늘이 점지한 운명적 만남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봤다.
위의 저 식사를 끝마치니 대략 8시 반. 공연은 8시부터 시작. 택시 타고 달려서 가니 그래도 오프닝 밴드가 있었던 것인지 이제 막 시작한 티가 나더라. 새로 바뀐 보컬에 대한 걱정이 좀 있었는데, 귀를 의심케 했다. 66년생이라는 이 '젊은' 보컬은 거의 모창이라 해야할 정도로 오리지널을 잘 카피하고 있었다. 음.. "그럼 프레디 머큐리도 모창으로 대체하고 Queen 재결성을 하면 안되나?" 따위의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가 스스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 어떤 밴드보다 보컬의 음색이 아주 독특한 밴드인데 어디서 잘도 이런 클론을 찾아냈구나. 히트곡도 많으신 이 분들, 관객석의 40~50대 어르신들이 다들 따라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스티브 하우의 쌍기타 신공! 마치 주윤발의 쌍권총 신공을 직접 본 것 같달까 ㅋㅋ 〈Roundabout〉 10분 버전도 좋았다. 이 옹들의 젊은 시절은 본 적도 없지만 살아남아서 이런 신공들을 펼쳐보여주시니 감읍할 따름이다. 다시 한번 산울림이 안타깝다는 생각 잠깐.


Steve Howe 노인의 쌍기타 신공

덧. 대학 시절의 뻘짓 에피소드 하나 더. 새내기 때 학생회 선배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던 친구놈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도 락을 엄청 좋아했다. 한번은 그 녀석이 "○○아, 그래도 얼터너티브는 기존 락에 대해 저항적인 음악인데 아트락은 좀 아니지 않냐? 보수적인 것 같은데"라고 물었고, 내 대답은 "아냐 임마, 아트락을 다른 말로 프로그레시브락이라고 하잖아. 몰라서 그렇지 이게 얼마나 진보적인데"였다. 우문에 우답이다. 아 얼굴 화끈거려.

댓글 2개:

  1. 왠지 S군이 나쁜 놈 같지만, ㅋㅋㅋ 그 놈은 이제 Muse도 봤고, Green Day도 봤고, Jeff Beck도 볼 꺼고, Bob Dylan신도 영ㅋ접ㅋ할 것이므로 하나도 안 부럽지 않고 조금 부럽네요. 나의 프로그레시브/아트락 베스트는 Il Volo, Pink Floyd, Yes. Yes의 베스트 앨범은 나도 Fragile이예요. 난 Cans and Brahms 듣고 브람스를 들은 사람임. ㅋ.

    답글삭제
  2. suksim/ 음 어린시절의 스노비즘을 고백하는 글이 어쩌다 또 스노브 냄새 폴폴 나는 글이 된 것인가? 뭔 리스트를 또 그렇게 늘어놓는 것이여! ㅋㅋ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