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전쟁경제의 신흥 산업 - 탈애굽기

몇 년 전 아프간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다가 납치된 사람들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전쟁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때 나의 논지는 "분쟁 지역에서의 민간인 구호와 의료봉사 활동은 새로운 전쟁의 중요한 시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놓을 수 없는 인도적 가치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더해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은 "분쟁 지역에서의 민간 외국인 납치는 협상 자금이 오가는 단기적 시장으로서 뿐 아니라 지속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파생상품 시장을 창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신흥 산업이란 무엇이냐. 바로 이교도로부터의 탈출기, 21세기판 탈애굽기다. 식민주의의 유구한 전통은 이미 12~13세기 때부터 이교도의 땅을 누비는 견문록과 여행서들로 출판시장에서 짭짤한 수익을 창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에서 클릭질만 몇 번 하면 아마존 오지 탐험도 좌르륵 코스가 나오는 마당에 그저 평범한 견문록으로 시장에서 주목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전쟁의 시대는 이처럼 답보상태에 놓인 출판 시장에도 블루오션을 제시한다.

주체신을 믿는 김씨 왕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알라신을 믿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이나 "건전한" 미합중국의 시민들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대상"이지만, 공포는 다른 한편으로 아주 잘 팔리는 상품이기도 하다. 언론인의 본분은 "다른 것 필요 없고 그저 주목받기"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로라 링과 유나 리 씨는 작년 김씨 왕조의 소굴로 직접 잠입하는 글로벌 스펙터클로 클린턴 남편까지 캐스팅에 성공하는 큰 흥행을 거두었는데, 어느덧 우리는 그 두 "기자"분들의 수기를 아마존닷컴에서 주문할 수 있다. 단독 주연이 아닌 더블캐스팅으로 대박 친 것이 못내 아까웠는지 두 사람은 책을 따로 냄으로써 소득을 쪼개는 불쾌함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Somewhere Inside: One Sister's Captivity in North Korea and the Other's Fight to Bring Her Home』, 『The World Is Bigger Now: An American Journalist's Release from Captivity in North Korea . . . A Remarkable Story of Faith, Family, and Forgiveness』). 애초에 김씨왕조의 "미개한" 이교도들도 감히 미합중국의 기자님들을 해할 수는 없었을 터, 저 현명한 두 아시안 아메리칸은 블루오션을 선점하여 올라앉을 돈방석을 찾았다.

이에 질세냐. 하나님의 나라 미합중국을 본보기로 열심히 토착 시장을 만들어나가는 "삽의 민족"에게도 기회는 있다. 다만 이곳은 "유교 자본주의"라 자처하는 "사우스 코리아"이니 로라나 유나처럼 닥치고 알라딘닷컴에 올리지 못하는 불편함은 있다. 유교 역시 이교도의 신앙이니 두고두고 멸시해주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 기독교 주식회사의 사업가들은 유교가 만들어놓은 "체면"과 "명분"의 질서를 산업적 기반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필요한 것은 대놓고 상품을 진열대에 올려놓는 일이 아니라, 돈 낼 사람들과 돈 거둘 사람들을 조직하고 "유교적" 질서 속으로 밀어넣는 일이다. 비매품인 아프간 탈출기가 돈 벌어주는 상품이 될 수 있는 바탕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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