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7일 월요일

지아장커의 항의

방금 호주 멜버른영화제에 대한 중국네티즌들의 해킹 보도와 함께 이어진 보도. 낯익은 감독의 얼굴이 화면에 뜨고 그 사람의 것이라는 빠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왜 하필 이때 그런 사람의 영화를 틀고 초청까지 하는 것입니까!"

위구르인족의 '대모'라는 레비야 카디르를 담은 다큐를 상영하고 그녀를 초청하는 영화제, 그 영화제에 대해 항의하면서 참가를 취소하고 보이콧을 선동하는 중국감독들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첫머리를 차지한 '가장 유명한' 감독.

그렇구나. 중화대국의 그 큰 발걸음을 런닝셔츠 바람으로 비웃을줄 알던 그 사람도 실은 뿌리 깊숙히 '한족의 아들'이었구나. 충격과 공포다.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398578_2687.html

2009년 7월 23일 목요일

미디어법과 테이져건

미디어법 문제와 쌍용차 사태를 전혀 별개의 사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미디어법은 몰상식의 문제로, 민주주의의 문제로 보는 데 비해, 쌍용차 사태는 국민경제적 사안에 대한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순진무구한 생각에는 박근혜식 '뒤에서 칼꽂기'가 제격이다. 미디어법은 의회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의회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수(數)와 힘의 우위에 기반한 폭력적 입장관철을 그럴싸한 외피로 가린 것에 불과하다. <100분토론>이 100분간의 한판 버라이어티 쇼이듯이 의회에서의 '합의와 토론'은 판타지다. 지금 문제를 단지 의회 민주주의의 문제로 보는 '합의 판타지' 애호가들에게 남은 여생은 고난의 연속일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미디어법이 경제적 민주주의와 깊이 결부된 의사소통의 문제라는 데 있다. 미디액트가 감사로 발 묶이고 각종 독립영화 단체, 군소 영화제들이 지원금 삭감과 지원 철회의 된서리를 맞는 등 영화판의 선행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소수자들의 표현과 의사소통 통로는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 조중동이 불온한 이유는 친일의 행적, 독재에의 부역 문제 뿐 아니라, 그들 언론 자본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 사채 자본과 재벌 자본이라는 데서부터 유래한다.
한겨레와 경향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MBC가 광고 급감의 위기를 맞는 상황은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본질이 아니라, 그들 자본이 취약하고 재벌 광고주들의 흔들기에 큰 폭풍을 맞을 정도로 빈곤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미디어법은 친정부적 언론의 양성 문제이기 이전에 친자본적 언론의 양성 문제다. 이번에 미디어법과 함께 가결된 금산분리완화법 역시 재벌자본의 입김에 의한 것이라고 볼 때 둘은 한 몸이다. (물론 이러한 친자본적 언론의 양성은 친자본적 정권의 재창출이라는 악순환을 낳게 될 것이다.)

쌍용차 문제는 여전히 '국민경제'라는 판타지에 '국민' 명찰을 단 사람들이 휘둘리고 있다는 사례이며, 그 '국민경제 살리기'가 실상은 재벌과 거대자본 살리기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키는 사례다. 세금을 풀어 대자본의 파국은 막을 수 있지만, 그 자본이 희생양으로 삼은 '국민'들은 구할 길 없는 실업과 파산의 정글로 몰아내야 하는 정부. 일자리 창출이라는 '단감'을 위해 일자리 포기라는 '대승적 판단'에 몸을 실으라는 정부. 이제 그 정부가, 자본의 앞잡이가 총을 빼들었다. 테이져건을 든 특공대들이 사냥에 나섰다. 사냥감은 이미 '국민'의 자격을 잃은 자들, '국민경제'를 지킬 수 없으면 '국민'의 권리도 자격도 갖출 수 없는 자들이다. 총을 빼든 정부는 이것이 합의를 위한 싸움이 아님을, 그저 자본과 임노동자 사이의 전쟁에 불과한 것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합의판타지' 애호가들에게 미디어법과 달리 쌍용차 문제는 노조원들이 집단이기주의를 버려야 하는 문제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판타지가 깨진 후의 세상은 생각보다 더 잔혹하다. 그들 역시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라 비정규직 자격을 잃지 않도록 보호 받아야 하는 운명이며, 그들 역시 무너질 위기의 대자본을 위해 가미가제처럼 대승적 희생으로 내몰릴 운명이다. 아마도 '합의판타지'의 연장을 위해 10월 선거와 다음 대선에서 열심히 투표하겠지. 그러나 어쩌나.. 미디어법을 '합의판타지'의 장애물 정도로 축소시키는 그들의 대안세력, 민주당 역시 '국민경제'의 애호가들이다. 판타지의 달콤함을 갈구하며, 당장의 난리통을 냉소하며, 언젠가의 '한 표'로 한판역전승을 꿈꾸며 관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들은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테이져건의 과녁이 되어 끊임없이 도망 다녀야 하는 사냥감으로 돌아간다.

내가 느낀 무력감은.

국회 조폭들의 뻘짓거리에 무력감 따위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아니 무반응이, 그 깊은 권태감과 귀아픈 적막이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벤야민이 바라본 바이마르가 이런 곳이었을까.
도망가면 안되지만, 도망칠 곳도 없지만, 그런 감정이 든다.